대구 변호사사무실 방화범, 투자 관련 소송 4건에 연루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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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전날 형사 사건 유죄…당일 오전도 투자 소송 패소
"억울해서 우야노"…눈물바다 된 희생자 발인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발인식에서 유족과 지인들이 희생자들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발인식에서 유족과 지인들이 희생자들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범 천 모(53·사망) 씨가 투자와 관련해 모두 4건(항소심 제외)의 법적 분쟁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천 씨가 처음으로 소송을 낸 것은 2016년으로 보인다. 그는 2013년 대구 수성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려는 시행사와 투자 약정을 하고 모두 6억 8000여 만 원을 투자했고, 일부 돌려받은 돈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금 5억 3000여 만 원과 지연 손해금을 달라며 시행사(법인)와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시행사(법인)만 천 씨에게 투자금 및 지연 손해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봤고, 시행사 대표 B 씨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천 씨는 이에 반발해 항소했지만 기각 당해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그러나 B 씨가 대표이사인 시행사는 천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고, 천 씨는 해당 시행사의 주상복합아파트 신축사업과 관련해 수탁자 겸 공동시행자였던 투자신탁사를 상대로 2020년 추심금 청구 소송을 냈다.

천 씨가 투자한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은 사업 부지와 그 부지에 신축할 건물 및 이에 대한 관리·운영 등의 사무를 투자신탁사에 맡긴 상태였다.

천 씨는 신탁계약에 따라 채권 추심권자인 자신도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신탁사 측은 "계약에 따라 신탁사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고, 시행사 채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발인식에서 유족과 지인들이 희생자들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발인식에서 유족과 지인들이 희생자들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에서 패소한 천 씨는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천 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해당 회사가 천 씨에게 채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 재판의 항소심 선고가 범행 직전인 9일 오전에 있었고, 피고인 신탁사 측 법률 대리를 맡았던 변호사 사무실도 불이 난 건물에 있다.

투자금을 계속 돌려받지 못한 천 씨는 지난해에는 B 씨만을 상대로 약정금 반환 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B 씨의 변호를 맡은 인물이 불이 난 사무실에 소속된 변호사였다.

B 씨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천 씨는 "선행 승소 판결이 있는데 B 씨가 시행사를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에서 법인격을 남용하고, 시행사도 끊임없이 채무면탈을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B 씨는 천 씨와 채권·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천 씨는 이 소송에서도 졌다. 법원은 "원고(천 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B 씨가 시행사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기 부족하고, 실질적 지배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곧바로 법인격 남용을 인정할 수도 없다"며 천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천 씨가 이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지난해 말에 항소심이 시작됐고, 오는 16일 대구고법에서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었다.

천 씨는 이러한 민사 소송들을 벌이는 과정에서 형사 사건에도 연루돼 범행 전날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7년 대구·경북지역 부동산 정보 공유 대화방에 자신이 투자했던 사업의 시행사 대표이사를 비방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천 씨는 지난 8일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이 비방을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한 것이 인정된다"며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9일 오전 추심금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한 직후 범행을 저질렀다.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합동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합동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방화사건 희생자 발인일인 이날 오전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날 오전 7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전날 발인한 희생자 1명을 제외한 희생자 5명의 발인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유족들은 애써 눈물을 참았으나 누군가 "천사를 먼저 데리고 가나…"라고 하자 곳곳에서 한탄이 쏟아졌다. 지인들은 곁에서 "이래 보내도 되는 거가", "착한 놈 먼저 데리고 가나", "너무 억울해 가지고, 억울해서 우야노"라며 울분을 토했다.

오전 8시께 사촌지간인 김 모(57) 변호사와 김 사무장의 관이 차례로 나오자 김 변호사의 아내는 "잠깐 갔다 온다 했잖아 자기, 집에 와야지"라고 흐느끼며 관 위에 쓰러졌다. 친인척들과 지인들은 "진짜 이건 아니다, 아니다", "우리 새끼 우야노", "뭔 일이 이렇게 되노", "진짜 미치겠다", "사촌들이 이게 뭐고"라며 함께 울었다. 곁에 있던 자녀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먼 곳을 응시했다.

유족들의 오열 속에 발인을 지켜보던 배 모(72) 변호사는 취재진에 "가슴이 너무 무거워서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고,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어떤 식으로든 유족들한테 위로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배 변호사는 천 씨의 투자금 반환 소송 상대방의 변호인으로, 이번 사건 피해자인 김 변호사와 합동 법률사무실을 운영했다. 다른 피해자 5명은 두 변호사가 채용한 직원들이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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