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전날 이어 당일에도 패소… 대구 방화범, 자포자기해 불 지른 듯(종합)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지난 9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으로 숨진 사망자의 사인이 모두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소견이 나왔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 숨진 방화 피의자는 여러 법적 분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자 자포자기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12일 대구 수성경찰서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망자 7명(피의자 포함)에 대한 부검을 한 결과 직접적 사망 원인은 화재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추정된다는 간이 소견이 나왔다. 2명의 시신에는 흉기에 의한 손상(자상)이 있었지만, 직접적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소견도 추가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종 사망 원인과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가 범행에 사용됐는지 여부 등은 국과수의 최종 감정서를 받아보고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투자금 소송 등 4건 법적 분쟁 중
7명 사인 일산화탄소 중독 추정
경북대병원서 희생자 합동 발인식
경찰은 이번 방화에 사용된 휘발유 구입 경로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화재 현장에는 휘발유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유리 용기 3점과 휘발유가 묻은 수건 등 잔류물이 발견됐다. 경찰은 피의자 A 씨 거주지 일대 CCTV 분석 등을 통해 휘발유 구입 경로와 시기 등을 수사 중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 1점의 출처도 확인 중이다.
12일 오전에는 이번 방화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 5명에 대한 합동 발인식이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숨진 피의자를 제외한 희생자 6명 중 1명의 발인은 앞서 11일 합동 분향소에서 먼저 치러졌다.
A 씨는 2013년 대구 수성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려는 시행사와 투자 약정을 하고 6억 8000여만 원을 투자했고, 일부 돌려받은 돈을 뺀 나머지 투자금 5억 3000여만 원과 지연 손해금을 달라며 시행사(법인)와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시행사(법인)만 A 씨에게 투자금과 지연 손해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고, 시행사 대표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A 씨는 항소했지만 기각돼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이후 A 씨는 시행사가 돈을 돌려주지 않자, 수탁자이자 공동시행자였던 투자 신탁사를 상대로 추심금 청구 소송을 2020년 냈고,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기각했다. 이 재판의 항소심 선고가 범행 직전인 지난 9일 오전에 있었고, 피고(신탁사) 측 법률 대리를 맡았던 변호사 사무실도 불이 난 건물에 있다.
A 씨는 투자금을 계속해 돌려받지 못하자, 지난해에는 시행사 대표만을 상대로 약정금 반환 소송을 냈다. 법원은 다시 시행사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에서 시행사 대표의 변호를 불이 난 사무실에 소속된 변호사가 맡았다.
A 씨는 여러 건의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형사 사건에도 연루됐다. 2017년 부동산 정보 공유 대화방에서 자신이 투자했던 사업의 시행사 대표를 비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A 씨는 지난 8일 형사 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9일 오전 추심금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한 직후 범행을 저질렀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