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육성’ 명분 수도권 대학 특혜 안 된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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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취지로 수도권 대학의 정원 확대를 속전속결로 추진하면서 지역의 반발이 거세다. 비수도권은 이번 조치가 “수도권 대학의 ‘인재 블랙홀’을 확대하면서 지방대의 고사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연일 강조하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수도권 규제완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고조된다. 그동안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인규집중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에 대한 총량 규제를 받아왔다.


윤 대통령, 관련 인재 양성 지시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신속 추진

지역 인재 유출 지방대 고사 위기

시민단체 “지방대 우선 기회 줘야”

수도권 규제 완화 ‘신호탄’ 우려도


 영남·호남·충청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균형발전국민포럼은 13일 공동성명을 내고 “반도체 인력양성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도권 규제까지 풀어 수도권 대학에 그 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망국병인 수도권 초집중화를 가중시킬 것이 자명하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포럼은 이어 “반도체 인력양성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만큼 비수도권 지방대학에서 우선적으로 하도록 기회를 줘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목표 중 하나인 지역균형발전을 적극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반도체 인력 10만명 양성’을 공약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이 잘 되려면 교육부가 잘해야 한다”며 관련 인력 양성에 대한 교육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고, 이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수도권과 지방에 비슷한 숫자의 (반도체 관련학과)증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대학 증원 확대를 기정사실화했다.

 정부는 지역의 반대가 거센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보다는 대학의 결손인원을 활용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21개 첨단 신기술 분야 정원을 수도권 대학 4100명, 비수도권 3900명 정도로 증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수도권 대학으로의 지역 인재 유출을 가속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꼼수 규제완화’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또 비수도권의 반발을 감안해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지방대에 재정 지원을 좀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도 ‘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반응이다. 부산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지역에 조금 인센티브를 준다고 기업과 연구소가 집중된 수도권 대학과 지역 대학이 경쟁이 되겠느냐”며 “공정한 경쟁을 빙자한 사실상 수도권 대학 집중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지방대 고사는 당장의 현실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조사한 2020년 전국 대학 입학생 수를 보면 10년 전보다 8.2% 줄었는데 부산(-11.3%), 울산(-17.9%), 경남(-16.6%) 등 비수도권은 모두 감소세가 커진 반면, 서울(+0.9%)과 인천(+1.8%)은 오히려 입학생이 늘었다.

 정부 정책이 실제 반도체 산업 현장 수요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실제 반도체 인력난이 심한 곳은 중소기업인데 수도권 주요 대학 중심으로 인재를 양성한다고 그 인재들이 중소기업으로 가고, 또 거기에 남아 있겠느냐”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수도권 팽창을 그나마 막아왔던 수도권 규제완화의 틀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행정 규제 개혁은 상당수가 수도권에서의 연구 환경 개선, 공장 증설 등인데, 이번 반도체 인력 충원 같은 대응 기조를 이어갈 경우, 윤석열 정부가 표방하는 ‘지방 시대’는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3일에도 “규제 개혁이 곧 국가의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부산 정치권 관계자는 “현 정부가 공공기관 몇 개, 인프라 몇 개 해주는 것으로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생각한다면 역대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는 수준밖에 안 될 것”이라며 “비수도권에 인적·물적 역량을 집중하고, 기업의 요구도 최우선적으로 지역과 연결 지어 해법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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