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칼국수 한 그릇에 담긴 글로벌 식량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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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

나른한 일요일 오후 외식. 아내와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오랜만에 칼국수를 먹기로 결정했다. 늘 주문하던 대로 2인분을 시켜 흡입하려던 찰나였다. 그릇에 담긴 국수 양이 평소와 달리 어딘가 허전한 게 아닌가. 그제야 가게 한 구석에 작은 글씨의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밀가루 가격 상승으로 인해 1인분 제공량을 줄였다며 양해를 구한다는 주인장의 간곡한 당부였다.

인심 후한 사장님의 국수 한 그릇은 양을 줄었어도 여전히 뜨끈하고 넉넉했지만, 밀가루 가격 폭등의 여파를 점식 식탁에서 체험한 순간은 서늘한 기억으로 남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왜 식량위기를 부추기는 것일까.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곡물가 폭등, 전쟁 탓만은 아냐

미국의 기록적 가뭄 영향 더 커

새로운 틀로 기후위기 정책 봐야


요즘 우리는 원자재와 곡물의 가격이 연일 폭등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고유가에 치솟는 밥상 물가, 급등하는 금리, 연일 폭락하는 주식 가격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고 계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번 위기가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맛비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끝날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는 곡물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비료 원료의 주요 수출국이기까지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쟁이 시작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심각한 곡물 수급 비상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곡물 가격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인 2021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인은 또 다른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 지난해부터 기록적인 가뭄이 지속되고 있어서였다. 사실 미국 중서부의 가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10년간 가물지 않았던 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가뭄이 고착화하고 있으며 기후과학자들은 이 지역의 계속되는 가뭄이야말로 기후위기의 확실한 증거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곡물 생산은 평년에 비해 최대 40%까지 줄어들었고 이 영향으로 이미 2021년부터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하필이면 이 어려운 시기에 주로 북·남미 지역에 극심한 가뭄을 몰고 온다는 라니냐 현상까지 겹치면서 전쟁이 곧 끝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 식량 수급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심각한 기후변화로 완전히 망가진 2050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기후변화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가운데 대부분이 사막으로 변했고, 사시사철 바람에 실린 흙먼지가 불어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지구의 모습을 영화는 보여 준다. 심각한 기후변화를 방치한 인류에 의해 경작 가능한 땅이 상당 부분 사막으로 변해 작물을 생산하기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생명력이 가장 강한 옥수수를 키우며 근근이 살아간다. 영화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인류를 대표해 지구 대신 새롭게 정착할 행성을 찾아 우주여행을 떠나는 주인공 쿠퍼는 명대사를 남긴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영화 속에서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답을 찾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우리에겐 단 하나의 지구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떻게든 하나뿐인 지구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사람들이 왜 좀 더 식량위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기후위기의 본모습은 슈퍼 태풍, 살인적 폭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기후위기가 촉발할 식량 위기와 원자재 가격 폭등, 그리고 이로 인한 불안한 국제 정세와 전쟁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인류는 더 이상 늦기 전에 힌트를 얻어야 한다. 한 수 앞만을 내다보는 근시안적인 정책으로는 악수를 둘 수밖에 없는 싸움임을. 탄소중립에만 골몰하여 세 수, 네 수 앞서 대처해야 할 세계 식량전쟁에 대한 준비를 안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식량창고인 논과 밭을 갈아엎고 태양광 발전소를 공격적으로 늘려 가는 정책 역시 이런 맥락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기후위기 정책을 탄소 감축의 틀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의 시각에서도 새롭게 점검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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