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인스타그램 밖에서의 일상
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SNS를 통해 자기 삶을 과시하거나 파편적인 관계만을 맺을 때 공허함과 우울감이 심화된다고 해서 생긴 단어다.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된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카페인 우울증’은 현대인, 특히 청년층의 기저질환이 되어 버린 듯하다. 개인의 삶을 과도하게 노출하려 하거나 타인의 삶을 지나치게 선망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 정갈한 데코레이션을 얹은 예쁜 음식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음식을 왜, 누구에게 보여 주고 싶은 걸까?’ SNS에 포스팅되는 게시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내포하곤 한다. 아마도 ‘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어’ ‘이런 요리를 할 줄도 알아’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SNS는 행복한 겉모습만 향유
허망함·박탈감 느끼는 사람 많아
비대면 소통, 파편적 인간관계
‘카페인 우울증’ 갈수록 심각
직접 보고 눈 맞춰 대화 나눌 때
뜻밖의 위로와 공감 만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행복한 순간만 올라간다는 것을. 회사에서 깨지고, 관계에 힘들고,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한숨 쉬는 평일은 없다. 대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주말은 있다. SNS는 이렇게 나를 속이고 남에게 속아 주는 공간이다. 그런 행복을 포스팅하는 순간, 근심·걱정 없는 여유로운 주말을 향유하는 사람이 된다. SNS는 팍팍한 삶 속 작은 행복을 간직하라는 기록 본능과 잘살고 있음을 불특정 다수에게 어필하라는 자랑 본능을 부추긴다. 물론 게시물을 올리는 순간은 행복하다. 그런데 그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타인의 SNS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SNS 활동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왜 그만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답을 내놓는다. 남을 부러워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란다. 취업하고 경제력을 갖는 나이가 되면서 SNS 게시물들이 점점 노골적으로 부를 선망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느낀다. 나에게 없는 능력을 남이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박탈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경쟁하듯 좋은 것을 올리고 또 상대의 게시물에 좌절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SNS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 작년에 영국의 한 보건학회는 인스타그램을 청소년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최악의 소셜미디어로 선정했고, 미국의 연구진들은 SNS 사용 시간을 줄일수록 외로움과 우울증 증상이 감소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포스팅하는 게시물이 진짜 일상과 거리가 멀어서 그렇다. 인스타그램에는 별것 없는 일상 중에서 좋은 순간, 올릴 만한 순간을 거르고 걸러서 남은 장면 하나를 올린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그 행위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깨닫게 된다. 데코레이션이 잘 된 음식을 찍어 올리려던 순간에 멈칫했던 것처럼 말이다.
비대면 소통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1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 이후 사회적 고립도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대인 신뢰도도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34.1%를 기록한다. 톡 하나로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고 SNS ‘좋아요’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간편한 세상에서 매우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와 대화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실은 모두 여과할 필요 없는 관계를 갈망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별것 없는 일상을 나누고, 가끔 찾아오는 부정적인 생각도 드러내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애써 지우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SNS에서는 그런 마음들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래서 좋은 것만 보여 주려는 온라인 세상에서 탈피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손에 닿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타인을 청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계.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하고 솔직한 마음을 나누려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이런 건 불편을 감수하는 관계다. SNS는 근황을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비해,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이 불편을 감수할 때 뜻밖의 위로를 마주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전혀 몰랐던 타인의 새로운 소식도 들을 수 있다.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듣고 말하는 관계에는 분명 그런 힘이 있다. 당신의 인스타그램 밖에서의 일상이 궁금하다. 거르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 누군가가 알아주길 기다리지만 꺼내 보이지 못한 마음.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