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흔들리면서도 끝내 버티고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버티고(vertigo)는 어지럼 증상을 말한다. 자신이나 주변 환경이 움직이거나 회전하는 듯 느껴진다. 심하면 균형을 잃거나 불안감으로 일상이 무너지기도 한다. 전계수 감독, 천우희 주연의 동명 영화가 있다. 제목이 상당히 중의적이다. 아버지에게 손찌검당해 고막이 파열된 서영은 버티고 증상을 겪고 있다. 계약직이라는 불안한 신분과 위태로운 사랑,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은 엄마 사이에서 삶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현기증 나는 일상을 버티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오늘 하루도 몹시 흔들렸지만 잘 견뎌냈다.”
고단한 삶의 나날에서 흔들리며 버티는 이가 어디 서영뿐이랴. 청년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인건비 부담으로, 기업은 고금리 고환율로 벼랑 끝에 내몰린다. 고물가에도 임금은 제자리걸음인 직장인의 시름도 깊다. 예술인의 처지는 더욱 힘겹다. 가뜩이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작업인데다 혼자 할 수도 없다. 작품은 팔리지 않고 운 좋게 무대에 선다 해도 출연료만으로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네 삶이 이토록 가혹하게 흔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문화예술기관도 마찬가지다. 계약직도 경쟁이 치열한데 정규직은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부산에서도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채용방식을 채택했단다. 공정성을 제쳐두더라도 오랜 기간 현장에 몸담아 온 이들에게는 낯설다. 실낱같은 희망에도 그림자가 짙다. 정규직의 고민도 깊다. 전문성은 부정당하기 일쑤인 데다 승진은 요원하기만 하다. 부적격자가 간부자리를 꿰차거나 내부 승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사직서를 쓰도록 내모는 것만 같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치곡(致曲)에 치곡을 거듭해도 일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영의 이명처럼 상실감은 내내 삶을 뒤흔든다.
버티기란 외부의 압력에 맞서 견디는 일이다. 환경이나 조직의 힘 때문에 신산한 삶으로 내몰리면 피가 마른다. 그런데도 굴복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일은 저항의 다른 이름이다. 숫제 흔들리면서도 끝끝내 버틸 때 말이다. “괜찮아요, 당신은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 빌딩 아래 저 고단한 삶의 밑바닥까지 스스로 추락하려는 서영을 붙잡는 관우의 말은 새삼 위로가 된다.
염천에 접어들었다. 선풍기 하나로라도 이 더위를 굳건히 버텨낼 일이다. 굳이 우리 삶을 위로해 줄 그늘 짙은 숲이 아니어도 좋다. 운명처럼 계절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다.
칠월의 끝자락에서 사랑하는 J가 새로운 길을 나서기로 했단다. 세련되고 유능한 공연기획자다. 전국의 관심을 끌었던 부산문화회관 브랜드 공연 ‘하늘 아래 그 콘서트’가 그의 작품이다. 몹시도 흔들렸지만 옹골차게 견뎌냈으니 그만큼 환한 날들을 맞이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