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문냉방 이유요? 손님 끌려면 문이라도 열어 둬야…”
무더위와 코로나19 재유행이 겹치면서 가뜩이나 불경기와 고물가로 울상을 짓는 상인들의 어깨가 더욱 처지고 있다. 에너지 절약과 전기요금 등을 생각하면 문을 닫고 에어컨을 가동해야겠지만, 자칫하면 손님으로부터 실내 환기가 안 되면 코로나19 위험이 높아진다는 핀잔을 들을 수 있어 마음대로 문을 닫고 영업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10일 낮 12시 부산 부산진구 서면 젊음의 거리 일대는 덥고 습한 날씨에도 휴일을 맞아 오래 만에 활기를 띠고 있었다. 길 위를 걷다 보면 갑자기 찬 공기가 느껴지는데, 하나같이 출입문이 열린 상점을 지날 때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에어컨 찬 바람이 밖으로 새 나오는 것이다. 일명 ‘개문냉방’ 형태로 영업 중인 가게들이다. 서면 동보프라자 건물에서 놀이마루까지 260여m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 1층에는 모두 상점 28곳이 있는데, 그중 12곳이 에어컨을 켜 둔 채 출입구를 열고 영업하고 있었다.
서면 젊음의 거리 문 열어 둔 가게 즐비
손님 입점 유도·본사 지침·환기 이유
무더위에 전력 공급 예비율 10% 미만
시, 단속 강화 등 적극 대처 나설 것
개문냉방의 ‘호객’ 효과는 뚜렷해 보인다. 무심코 길거리를 지나다 찬 기운에 고개를 돌리고 매장에 눈길을 주는 행인들이 여럿 있었고, 그중 적잖은 이들이 찬 공기를 따라 화장품 가게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부산은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섰다.
상인들은 출입문을 열어 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면 전력 소모량이 크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영업을 위해서는 ‘개문냉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물가 상승 등으로 가뜩이나 이윤이 줄고 있는 자영업자들로서는 개문냉방이 주는 호객 효과를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박해진 셈이다. 화장품 매장 매니저 김 모(31) 씨는 “본사 지침에 따라 문을 열어 둔 채 영업하고 있다”며 “전기요금이 평소보다 많이 부과되겠지만 세일 기간 동안 한 명이라도 더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재확산 추세도 개문냉방 영업을 부추기고 있다. 방역 당국은 최근 빠른 속도로 감염 재유행이 이뤄지는 주된 이유로 에어컨 가동으로 인한 실내 환기 부족을 꼽고 있다. 이 때문에 활짝 열린 출입문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속옷 판매점 업주 이 모(40) 씨는 “최근 확진자가 다시 는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환기를 위해 내내 출입문을 개방한다”며 “더위를 피할 겸 매장에 들어왔다가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라도 출입문을 닫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개문냉방 영업 행태는 불가피하게 전력 수급 위기로 이어진다. 당초 부산시는 8월 중순께 전력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무더위가 평년보다 일찍 찾아오면서 이미 전력 공급 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내려가는 등 전력 수급 상황이 최근 매우 악화됐다. 전력 공급 예비율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 중 남아 있는 전력의 비율로 전력의 수급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부산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전력 공급 예비율은 7.2%에서 9.5% 사이로 사흘 연속 10% 미만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예비율이 17.5%에서 25.8% 사이를 기록한 것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부산시는 예비율이 5~5.5% 수준으로 떨어지면 개문냉방 단속 등 예비율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대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예비율 추이에 따라 통상 7월 말에서 8월 초 시행했던 단속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최근 2년간 코로나19 유행에 따라 온라인 계도 위주로 대응했던 방침에서 벗어나 올해는 대면 캠페인 진행도 계획하고 있다.
부산시는 곧 혹서기 전력 대책을 수립해 발표할 예정이다. 부산시 미래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전력 사용량이 벌써부터 크게 늘면서 전력 공급 상황에 대해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각 업소는 코로나19 재확산 추세에 따라 주기적인 환기를 통해 방역 지침을 준수하되 개문냉방은 최대한 자제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