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한국 곡물 자급률 20%, 이대로 괜찮을까
지구촌 ‘이상 기후’ 갈수록 심각… ‘식량 위기’ 대비책 절실
어쩐지 아직 초여름인데 너무 덥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평균기온이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심지어 6월 하순 평균기온은 전국적 기상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부산의 도심 건널목에 고정형 파라솔이 흔해진 것도 갈수록 더워지기 때문이다. 6월 세계 평균기온 역시 관측 사상 세 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2019년과 2020년에 이어 세 번째였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세상이 갈수록 뜨거워지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올해가 당신이 앞으로 살아갈 세월 중에서 가장 시원한 해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듣고 나니, 가슴속으로 냉기가 들어온다.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은 것일까….
이탈리아, 이달 초 40도 안팎 폭염
알래스카, 산불로 9700㎢ 피해
밀가루·식용유 등 가격 크게 올라
수입 곡물 가격, 하반기 폭등 조짐
국내 농지, 50년간 30% 이상 감소
곡물자급률, 2020년 기준 20.2%
식량 안보,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
글로벌 곡물 공급망 다변화 필요
■ 심상찮은 폭염·산불의 의미
요즘 세계 각국의 기상이 심상치 않다. 일본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보냈다. 도쿄 도심의 최고기온은 연이어 닷새 동안 섭씨 35도를 넘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도쿄에서 열사병 사망자만 52명에 달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달 초 40도 안팎의 폭염으로 최고 단계의 경계경보인 열파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열파(熱波)가 어린이·노약자는 물론 건강한 성인에게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였다. 지난 4일에는 이탈리아 알프스의 돌로미티산맥 최고봉인 마르몰라다 정상(해발 3343m)에서 빙하가 무너지면서 눈사태가 발생했다. 7명이 목숨을 잃고 14명이 실종되는 대형사고였다. 지난달부터 이탈리아 전역에서 지속된 폭염의 영향으로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올해 5월부터 현재까지 산불로 9700㎢의 면적이 불에 타 역대 최악의 피해 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해에는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 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짧은 여름 기간 발생한 이 산불로 한반도보다 더 큰 면적이 불에 탔다. 이처럼 기후가 매년 나빠져서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기후는 비가역성이 있어서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전까지의 자연재해가 시기나 지역이 국한된 단발성이었다면, 최근에는 농업 등 연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복합 재해의 성격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유발하는 식량위기에 대해 시급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 하반기엔 곡물 가격 더 뛴다
2분기 생활필수품 가운데 밀가루(31.3%)가 최고, 그다음으로 식용유(23.9%)가 많이 올랐다. 밀가루와 식용유가 없으면 안 되는 빵집, 중국집, 치킨집은 직격탄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있다. 물가 폭등 시대를 맞아 업주는 식당을 운영하기가 힘들고, 소비자는 외식 한 번 하기가 겁이 난다. 3분기 수입 곡물 가격은 전 분기보다 10% 이상 오를 수밖에 없다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고점을 찍은 시기(3~6월)에 구입한 물량이 3분기에 국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세계 밀 공급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진 변수가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인 인도다. 지난 5월 인도는 밀 수출을 연말까지 전면 금지했다. 세계 곡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자국의 식량 안보를 우선한 결정이었다. 122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인도의 밀 생산량이 올해 최대 절반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체 인도가 올해 얼마나 더웠는지를 찾아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 수도 뉴델리의 5월 기온은 연일 섭씨 49도를 기록했다. 지속되는 폭염에 새까지 탈수 증상과 체력 고갈로 연이어 떨어질 정도였다. 올해 세계 각국이 내린 식량 수출 제한 조치는 57건이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45건(78.9%)의 제한 조치가 집중됐다. 각국의 수출 제한으로 영향을 받는 곡물은 칼로리 기준으로 세계 전체 수출량의 16.9%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 당장 식량 안보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농지 줄며 식량자급률 추락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곡물 시장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농지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매년 여의도 면적 52배에 달하는 농지가 전용될 정도로 식량 생산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적정한 식량 생산에 필요한 농업진흥지역 우량농지만큼은 확실히 지키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970년 229만ha였던 농지는 2020년 156만ha로 줄었다. 50년간 30% 이상의 농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러니 1970년대 86.2%였던 식량자급률은 45.8%로 40.4%P나 하락했다. 쌀을 제외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0년 기준 밀 자급률은 0.8%, 옥수수 3.6%, 콩 30.4%에 불과하다. 곡물자급률은 2020년 기준 20.2%에 그쳤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농지 위에는 아파트, 도로, 산업단지 등이 들어섰다. 부산에서도 명지 개발로 ‘명지대파’가 사라졌고, 대저 신도시 개발로 ‘대저 짭짤이 토마토’가 그 뒤를 이을 전망이다. 더 이상의 농지 훼손을 막지 않으면 식량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농지법 위반’은 여전히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지난해 LH 사태 때를 돌이켜 봐도 그랬다. 농지는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었다. 2010년 이후 시도별 농지전용 현황을 보면 경기도가 전체 농지전용 면적 가운데 24.1%(2만 6361ha)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 강대국은 식량위기 맞서 백년대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OECD 국가 중에서 식량 대란이 벌어지면 가장 심하게 당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사실 한국의 식량 해외 의존도는 너무 높다. 식량을 가진 나라가 자기들 먹을 것도 없다고 안 팔면 못 사는 것은 간단한 이치다. 최 교수는 "식량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아직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출간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식량 위기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곡물자급률이 20% 미만인 한국이 10년 안에 겪게 될 문제다"라고 구체적으로 전망한다. 사실 가뭄, 산불, 전쟁 등 글로벌 위기가 겹쳐서 발생한다면 식량 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백년대계를 세워 놓고 있다.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이 농업 관련 인공위성을 활용해 세계 주요 작물의 재배 면적을 추정해 생산 현황을 분석하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경쟁력이 생긴 중국의 밀 수입 의존도는 2.9%에 불과하다. 우리처럼 해외 식량의존도가 큰 일본도 2014년 호주와 경제파트너십 협정(EPA)을 맺을 때 향후 곡물 수출 금지 시 일본을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이미 취했다.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는 무려 170개국에서 식품을 수입한다. 전략적인 수입선 다변화의 결과다.
하지만 우리는 식량 안보라는 의제 자체가 아직 낯설다.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쌀이 과잉이고 콩, 밀, 보리, 옥수수 등 다른 작물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남 소장은 "더 늦기 전에 식량 안보를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시키고 글로벌 곡물 공급망을 다변화해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파종량이 줄었으니 밀가루 가격 폭등은 최소한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2005년 중동 각국의 혁명으로 번진 ‘아랍의 봄’은 세계 식량 가격 상승이 촉매제였다. 식량 안보를 무시하면 난리가 난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