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독이 든 사과’ 반도체 학과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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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현 부산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장

대학 진학·취업으로 청년 유출 심각

학령 인구 감소 겹쳐 지역 대학 타격

비인기 학과 감축만으로는 한계

경기·충청권에 반도체 기업 투자 집중

부산 반도체 기업 유치는 갈 길 멀어

지역 산업 육성이 대학 혁신 지름길


지난주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목표·120대 국정과제가 확정되었다. 취임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빠졌던 국가균형발전 10대 과제가 추가되어 마무리된 것이다. 지역의 입장에서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정부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라는 국정목표로 정리된 10개 국정과제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이번 발표된 ‘지방시대’ 국정과제의 핵심은 지역 인재 육성을 통한 창업 및 혁신 생태계 강화로, 지역 대학의 어려움이 인력 양성의 문제를 넘어 지역 산업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지역 대학이 어려운 것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든 학령 인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지역의 청년 인구 유출 추이를 보면 지역 대학의 어려움은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청년은 두 번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한다. 첫 번째는 대학 진학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대학 졸업 후 취직을 위한 것이다. 부산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최근 5년간(2016~2020년)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청년 인구 4만 2327명 중 25~29세(2만 100명)가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이 20~24세(1만 6295명) 순으로 대학과 일자리로 인한 유출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 대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산업 육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학의 혁신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대학 평가를 통한 정원 감축뿐이었다. 문제는 주요 평가지표에 신입생 충원율 등이 반영되어 지방 대학의 정원만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국 존폐의 갈림길에서 지역 대학들이 선택한 방법은 신입생 충원율이 낮은 학과는 폐과하고, 인기 위주의 학과를 신설한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지역에 유사한 학과들이 속속 신설되고 있으며, 중요하나 인기 없는 공학 관련 학과는 계속 없어지고 있다. 실제로 부산 4년제 대학 공대 입학생은 2017년 1만 311명을 최고점으로 하여 2021년 9204명까지 감소했다. 반면 서울지역은 2011년 2만 973명에서 2021년 2만 8195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는 반도체 학과 정원을 최대 5700명 증원하여 향후 10년간 15만 명의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관련 학과를 포함한 지역의 공과대학이 없어지는 현실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를 증원한다면 수도권 대학을 위한 증원이 될 것이 뻔하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대학의 경쟁력은 더 높아지는 반면 인재들의 수도권 유출로 인해 지역 대학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반도체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데 왜 지역의 반도체 관련 학과는 인기가 없을까? 반도체 학과를 졸업해도 취업할 기업체가 지역에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판교-화성-용인으로 이어지는 ‘K반도체 벨트’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빅2뿐 아니라 전후방 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이 벨트는 경기도를 넘어 천안, 온양, 청주까지 이어져 충청도 이남에는 반도체 산업 육성이 어려움을 의미한다.

물론 부산시도 파워반도체를 부산의 새로운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지원 체계 정도만 갖춰져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파워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여기서 부딪히는 것이 ‘기업 유치가 먼저냐, 인력 양성이 먼저냐’이다. 취업할 기업이 없으면 학생들은 입학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인력이 없으면 기업들이 찾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취업할 기업이 없는데 인력 양성만 하면 그 인재들이 수도권에 몰릴 것이므로 기업들이 인재를 찾아 굳이 지역으로 올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산업을 지역에 이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여 부산시는 파워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다양한 시책을 펼치고 있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지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미약한 상황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증원은 ‘독이 든 사과’라고 할 수 있다.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고 유혹을 갖게 하지만 결국 지역 대학을 더 어렵게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 이에 120대 국정과제에서 주요하게 다룬 지역 대학의 혁신을 위해서는 첨단산업 관련 인재 양성과 함께 지역 산업 육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기장-해운대-금정구를 잇는 ‘파워반도체 글로벌 신산업·혁신특구’를 지정해야 한다.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가능한 특구 지정을 통해 파워반도체 관련 국내외 기업과 연구소들이 집적되면 지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지역 대학에서도 반도체 관련 인력 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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