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지구는 펄펄 끓어도 아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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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

유럽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의 기온이 연일 40도를 훌쩍 넘어서면서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전례 없는 폭염과 산불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기후위기 관련 뉴스를 검색하던 중 폭염 끝에 발생한 화마가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을 덮쳐 주민들이 대피하는 자동차의 긴 행렬을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만 같은 거대한 산불을 배경으로 절망감과 무기력함에 빠져 인터뷰하는 주민들 영상을 보고 있자니 마치 화가 난 지구가 인류에게 “더 이상 내가 어떤 걸 보여 줘야 너희가 바뀌겠냐”며 호통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올 한 해 끝 모를 기후 재난에 많이 격앙된 듯 “기후위기에 대해 인류가 집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집단 자살뿐”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리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 무서운 자연의 위협을 이겨 내고 기후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요즘 벌어지고 있는 세계 도처의 기후위기 상황을 보고 있으면 정말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위중한 기후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져도 될 작은 희망들에 대해 과학의 언어를 빌어 이야기하겠다.


‘인류 멸종'에 대한 공포 과도해

놀라운 신재생에너지 기술 혁신

기후위기에 국가적 역량 모아야


먼저 근거 없는 멸망론부터 걷어 내 보자. 기후과학자들은 인류가 멸종으로 내몰릴 수 있는 지구 온도의 상승폭을 5~6도 정도로 보고 있고, 그 근거로 거대한 남극 대륙 빙하를 꼽고 있다. 현재 남극 대륙을 덮고 있는 빙하의 평균 두께는 무려 1.9km 정도이고 두터운 곳은 3km가 넘는다. 고기후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전 남극 대륙에 이 두터운 빙하가 따뜻한 기후로 인해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5~6도 높았음을 밝혀냈다. 사라진 빙하는 고스란히 해수면 상승에 보태졌고 이 시기는 지금보다 약 50m 정도 해수면이 높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해안가나 강가에 몰려 있음을 감안하면 50m의 해수면 상승은 인류 멸망에 준하는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얘기하는 지구 온도 상승의 합리적인 미래 예상치는 어느 정도일까. 당연히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6도의 멸종’과는 거리가 멀다. 올해 초 발간된 가장 공신력 있는 기후변화 보고서인 IPCC 6차 보고서는 현재 각국이 실행하고 있는 기후정책들을 검토한 후 이 정책들이 유지될 경우 산업혁명 이후 약 2.7도 수준의 온도 상승을 예상한 바 있다. 여기에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이 스스로 제시한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국가별 ‘탄소감축 목표치’(NDC)를 잘 지켜 나가는 경우라면 지구온도 상승폭은 더욱 줄어들어 2.4도 수준에서 지구 온도 상승이 멈출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불확실성은 감안해야 하나 현재로서는 이 수치들이 과학이 제시하는 지구 온도의 미래라고 보면 된다. 물론 2.4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국가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는 온도 상승이고 국제 정세의 불안정, 식량 부족과 난민 사태의 심화 등을 고려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정도의 온도 상승에도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2.4도에서 0.4도를 더 줄여 지구온도 상승폭을 2도 수준으로 제한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아직 인류에게 ‘2도’라는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또 다른 희망의 근거는 최근 10년간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는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량과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놀라운 성장세이다.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폭은 최근 10년 새 꽤나 큰 폭으로 둔화하고 있다. 2000년과 2010년 사이 온실 가스 배출량은 세계적으로 약 24%나 증가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그 증가폭이 7%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상당 부분 여러 선진국들과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석탄 사용량 감소에 기인했다. 기후악당으로 늘 내몰리던 인도와 중국이 석탄 사용을 줄여 나가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희망 시그널은 신재생에너지 기술 전 분야에 걸친 놀라운 혁신이다. 지난 10년간 풍력은 3배, 태양광은 무려 10배나 생산단가가 저렴해져 많은 선진국들에서 어느새 화석연료의 효율을 앞지르게 되었다. 확실히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여 준 지난 10년이라 평가되며 우리가 다음 10년을 지켜보며 희망을 키워 나가도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제위기, 기후위기 등이 겹치며 극심한 혼돈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이 혼란이 근본적인 시대전환의 방향성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더욱 거세어질 자연의 역습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 대전환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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