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30 부산에만 있는 특이한 아파트 TOP 3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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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의 지형은 산 아니면 바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산을 볼 수 있고,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평지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333만의 대도시. 이 많은 사람이 평지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수 없이 바다를 매립하거나 산을 깎아 억지로 평지를 만들었다. 덕분에 특이한 장소에 자리 잡은 아파트가 많이 생겼다. 절벽과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아파트, 경사를 그대로 살린 테라스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파트 등 특이한 형태가 존재한다. 또 바다 지척에 우뚝 서있는 대단지 아파트는 광활한 '오션뷰'로 다른 단점을 모두 상쇄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 세 곳을 선정, 직접 가봤다.


부산의 헬름 협곡

먼저 찾아간 아파트는 부산시 사하구 당리동 '동원베네스트 2차'다. 2006년에 지어진, 비교적 오래된 이 아파트는 인터넷에서 '부산의 헬름 협곡'으로 불린다. 헬름 협곡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나라 중 하나인 로한의 한 지역을 말한다. 절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그 한 가운데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는 게 특징이다. 동원 베네스트 2차가 있는 곳과 꼭 빼닮았다. 승학산의 한 산줄기가 아파트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태다.

사실 이곳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을 깎은 게 아니라, 석탄을 채굴하던 채석장 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있기 전에는 기중기 면허 시험장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계곡도 아파트 앞에 흘러 완벽한 '배산임수'를 자랑한다. 절벽이 둘러싸고 있는 특징적인 지형 덕분에, 8월의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부산의 끈적한 바람이 아닌 숲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상쾌한 바람이다. 432세대가 살고 있는데, 이곳 주민은 여름에도 에어컨을 잘 켜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거실에서 '폭포뷰'를

비가 내리면, 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절벽에 폭포가 흐른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 게시된 사진을 확인해보니 절경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운이 좋은 세대에서는 거실에 앉아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고도 한다. 진정한 숲세권이라면, 거실에 앉아서 폭포를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 많은 사람이 이 아파트의 사진만 보고 우려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산사태에 취약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해보니 산사태는 기우였다. 먼저 깎아지는 절벽은 암벽으로 흘러내릴 염려가 적다. 또한 만약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촘촘한 그물망이 절벽 전체를 다 감싸고 있다. 무엇보다 사진과 달리 아파트 단지와 절벽 사이의 거리는 꽤 멀다. 50m 이상 떨어져 있는데, 주차장이 있고 절벽과 단지 사이에는 높은 옹벽이 또 서 있다. 아파트보다 더 높은 지대에 기숙형 과학고인 '부산일과학고등학교'가 있어 학부모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지난 6월 실거래가는 105㎡가 2억 2500에 거래됐다. 평당 약 720만 원.


오션뷰의 끝판왕

두 번째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는 2008년에 지어진, 남구 용호동의 '오륙도 SK뷰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부산 도심 중심에서 꽤 떨어진, 남구의 끝자락이자 용호동의 가장 안쪽, 오륙도 바로 앞에 지어진 15개 동, 약 3000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다. 부산 기념물로 지정된 오륙도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아파트다. 달맞이 언덕에 우뚝 자리 잡은 '해운대 힐스테이트 위브'와 함께 주변 스카이라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비난 받기도 했다. 현재는 바닷가 근처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많아 '오션뷰의 끝판왕'이라는 별명은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W'가 지어지기 전만 해도 남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먼저 그리스와 로마 신전을 닮은 출입구를 지나자, 잘 가꿔진 조경과 도로가 깔끔한 느낌을 줬다. 비록 지상을 통해 차가 지나다니고는 있었지만, 보도가 넓게 조성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분양 당시 '고급 리조트'를 콘셉트로 내세웠는데 이 아파트의 지리적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다. 사실 위치 덕분에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보다는 은퇴한 노년층이 여유롭게 살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의 바닷가 근처 아파트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해풍 탓에 금속 구조물은 많은 부분 녹슬어 있었고, 습한 기후 탓인지 아파트 저층부 벽면에는 얼룩이 많이 묻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해무가 낀다고 전해진다.


가장 큰 단점은 교통

도시철도는 당연히 없고 버스 노선은 24, 27, 131번과 마을버스인 '남구2번'이 전부다. 대다수가 자가용이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주말이 되면 오륙도를 찾은 관광객으로 이곳은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넓지 않은 오륙도 공원 주차장이 가득 차면, 오륙도 SK뷰 아파트 앞 도로는 주차된 차로 난리가 난다.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버스 승객이 내리고 타는데 위험한 상황도 연출된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게 경전철이나 트램 등 교통수단이다. 지난해 부산 남구에 국내 1호 트램 일명 '오륙도선'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대감에 한껏 들떴는데, 지난달 비보가 날아왔다. 약 400억 원의 사업비가 설계과정에서 2배 넘게 급증해 국비 확보에 비상이 걸린 거다. 기재부는 당초 연구개발용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승객을 태우는 상용노선으로 변경해 예산을 지원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승객을 태우지 못하는 연구용 트램 모형만 좁은 도로에 새로 생기는 셈이다. 구간도 짧아져 오륙도까지 트램이 달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오륙도 SK뷰 아파트 주민이 트램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테라스형 아파트

요즘 아파트 대부분은 옵션으로 '발코니 확장'을 선택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거실과 방 등 실내 공간을 넓게 빼기 위해 확장을 선택한다. 그래서 발코니가 없거나, 있어도 안방과 연결된 조그만 공간이 발코니의 전부다. 간혹 '테라스'라고 이름 붙은 아파트가 많이 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 외벽에 맞닿아, 전망을 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즉 발코니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을 뿐인데 이것을 테라스라고 한다. 사실 테라스라는 단어는 '땅'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건물과 땅이 만나는 부분을 꾸며놓은 곳이다. 따라서 테라스는 항상 건물 1층에 있을 수밖에 없다. 주방이나 거실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1층 야외공간이며, 실내보다 조금 높거나 낮게 만든 야외 정원에 가깝다. 그나마 부산에서 테라스형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망미주공아파트다. 이름은 '망미'주공이면서, 수영구 망미동 소재가 아닌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이 아파트. 1986년 사용승인 되어, 37년 된 주공아파트가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 세 번째로 꼽힌 것은 전부 테라스형 디자인 덕이다.


재건축 후에도 테라스는 남길…

총 23동, 2038세대가 사는 곳으로 이 중 107동부터 110동까지 총 40세대가 1층 단독형 테라스동이다. 이 아파트의 상징으로 116㎡ 평 실거래가 기준, 2020년 5월 8억 500만 원에 거래됐다. 평당 2300만 원으로 해운대 등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과 맞먹는 수준이다. 경사를 따라 빨간 벽돌을 사용한 계단이 가운데 놓여 있고, 현관문이 마주 보고 있다. 야외 복도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에는 큰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 덕에 사진찍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한가로이 정원에서 책을 읽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언뜻 텃밭을 일궈놓은 세대도 있었다.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데, 재건축 후에도 테라스 디자인은 살렸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었다.

물론 이 아파트의 장점이 테라스만은 아니다. 아파트 내부엔 자연 경사를 활용한 커다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 주변을 비롯해 단지를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동 간격이 상당히 넓은데 그 공간을 녹지로 채워 마치 커다란 숲속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결말>

직접 가본 3곳의 아파트는 사진과 많이 달랐다. 절벽 한복판에 박혀있다고 오해를 샀던 동원베네스트는 사진과 달리 산과 아파트가 꽤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답답함 대신 한여름에도 시원한 쾌적함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두 곳도 모두 살기 좋은 아파트였다. 오륙도 SK뷰는 고급스러움과 오션뷰가 장점이었고. 망미주공아파트는 푸른 정원과 테라스라는 그림 같은 디자인을 자랑하는 아파트였다. 또 재건축이라는 호재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아파트 가격에 사람들은 민감하다. 살아보지 않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한 장으로 아파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어떤 아파트가 제일 비싼 아파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만, '어떤 아파트가 제일 좋은 아파트일까'라는 질문엔 정해진 답이 없다. 각자의 선호도가 다르고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평지가 부족한 지리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어진 부산의 특이한 아파트. 획일화된 외관으로 통일된 단지보다 개성 넘치는 아파트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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