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100년 빈도의 치수 대책이 필요해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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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탓에 기록적 폭우 빈번한 추세
철저한 준비로 예상치 못한 수해 막아야



통일신라 시대에 최치원이 경남 함양군 함양읍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인공 숲 상림(上林). 연합뉴스 통일신라 시대에 최치원이 경남 함양군 함양읍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인공 숲 상림(上林). 연합뉴스

■ 예부터 치수가 중요

물을 다스린다는 단어 ‘치수(治水)’는 하천과 호수의 범람을 막고 물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일을 위해 평소 관개시설 등 수리시설을 만들어 물을 잘 관리하면서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는 게 매우 중요시됐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존경받은 정치인 관중은 자연재해 중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이 물이라면서 치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자 ‘다스릴 治(치)’는 물(水)과 기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태(台)가 결합된 글자다. 물은 본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속성이자 순리다. 그래서 ‘치’라는 말에는 순리대로 처리하면 잘 다스려지고 기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국 치수를 잘하면 기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다.

이를 입증한 인물로 약 4000년 전 중국 고대의 첫 왕조인 하(夏) 나라를 세운 우(禹) 임금을 꼽을 수 있다. 우왕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성공 비결은 바로 치수였다. 그는 홍수가 잦은 황하 일대에서 9년간 벌인 치수사업에 성공해 만백성의 칭송이 자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홍수가 최대의 재앙으로 여겨진 까닭이다. 사람들이 홍수를 얼마나 무서워했던지 ‘재앙 災(재)’ 자라는 한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강물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나중에 불(火)이 더해진 지금의 글자로 바뀌어 홍수에 이어 가뭄도 재앙으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독교의 <성경>은 홍수를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늘의 인간에 대한 심판으로 봤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사건이 그것이다. 아무튼 인류가 태곳적부터 수재를 두려워했던 것만큼이나 치수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 8일 밤 수도권에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도로와 각종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밤 수도권에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도로와 각종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 ‘물 폭탄’에 잠긴 수도권

지난 8~14일 장마전선의 일종인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 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가 치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사망 14명, 실종 6명, 부상 2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기준으로 4204세대, 8061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침수된 주택과 상가는 1만 5862동, 가축 폐사가 10만 1880마리로 집계됐다. 438건의 산사태가 일어났고, 농작물 침수 피해 규모도 1853ha에 달한다. 이같이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는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권과 국가 번영의 상징인 서울 강남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기상청이 며칠 전부터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많은 비가 오겠다고 예보해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8~9일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침수 등 비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부랴부랴 조치에 나서 피해를 키운 것이다. 이번 수재가 대처가 소홀한 인재(人災)로 지적되는 이유다.

수도권에 큰 피해를 입힌 폭우는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가장 많은 양이라고 한다. 서울에는 이틀간 연평균 강수량의 3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 바람에 서울 도심 곳곳이 물바다를 이루며 주요 도로가 침수돼 교통 대란을 빚고 인명·재산 피해를 낳아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특히 2015년 침수 피해를 겪어 침수 취약지로 평가되는 강남구 일대에서 최악의 침수 피해가 재발했다. 정부 당국의 부실한 대응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 동작구는 500년 빈도를 넘어서는 하루 381.5mm, 1시간 최대 141.5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이 같은 강우량은 5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것인데, 현재 서울의 방재 능력은 30년 빈도인 시간당 95mm에 그쳐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의 수도권 치수정책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데도 절반이 넘는 인구가 몰려 사는 수도권이 방재시설 강화 등 충분한 인프라 뒷받침 없이 과도하게 급팽창한 결과일 테다.


2020년 7월 23일 3명의 사망자가 나온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서 소방대원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일보DB 2020년 7월 23일 3명의 사망자가 나온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서 소방대원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일보DB

■ 부산은 더 불안하다

부산기상청은 지난 16일 정체전선이 남하하자 17일 오후 6시까지 부산 지역에 많은 곳은 1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보고 호우 특보를 발효했다. 다행히 이날 주요 강수대가 빠르게 남해상으로 빠져나가며 비가 적게 내려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부산은 20일에도 비 소식이 예고돼 있어 안도할 수 없다. 비 오는 날이 잦아질 경우 부산에서도 수도권처럼 언제든 사상 최대의 국지성 호우에 따른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2020년 7월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서 차량 침수 사고로 3명이 숨지고, 같은 달에 동천이 2차례 범람하면서 주변 주택가와 상가가 무더기로 침수 피해를 당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더욱이 해안을 낀 부산은 바닷물이 차오르는 만조시간에 집중호우가 겹칠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수해에 취약한 것이다. 최근 한 빅데이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산에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집중될 경우 16개 구·군의 206개 동 가운데 70% 정도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현재 부산에는 폭우를 대비한 우수 저류시설이 11곳에 설치돼 있다. 이 시설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3시간 최대 강우량 175mm인 상황을 감안해 만들어졌다. 시간당 강우량이 58.3mm를 넘는 비가 3시간 동안 내린다면 저류시설은 수용량을 초과하게 된다. 2018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50년에 한 번 홍수가 일어날 경우를 감안해 마련한 저류시설이라 이번 수도권의 폭우 같은 큰 비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의 하수 처리시설 역시 평소 여유 상태가 20%에 불과해 용량 증대가 시급하다. 지역 지하차도 35곳의 배수펌프 용량도 지금보다 늘릴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부산은 저지대의 상습 침수지 말고도 고지대 170곳이 산사태 등으로 여름철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분류돼 철저한 안전 관리가 요구된다. 해마다 크고 작은 물난리를 겪고 있는 부산이 언제 대규모 수해 지역으로 둔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2020년 1월 상습 침수지로 꼽히는 부산 금정구 서·금사동의 한 동네 지하에 조성돼 가동 중인 우수 저류시설. 부산일보DB 2020년 1월 상습 침수지로 꼽히는 부산 금정구 서·금사동의 한 동네 지하에 조성돼 가동 중인 우수 저류시설. 부산일보DB

■ 강화한 치수 기준 절실

치수는 옛날부터 국가 운영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책이다. 국민의 생명, 재산과 직결된 사안이어서다. 중국에서는 치수의 성패가 왕조나 제후국의 흥망성쇠와 연결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도권의 폭우 피해와 관련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불편을 겪은 국민들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윤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올 5월 10일 취임 이후 처음이다. 지금까지 인사와 경제, 교육 등 여러 정책의 실패와 20%대로 급락한 지지율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이 대응이 미흡했던 정부 치수 대책에 분노한 민심 앞에서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작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날로 빈번해지는 집중호우의 심각성에 대한 위기의식과 빈틈없는 준비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초래한 국지성 호우 피해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대책 말이다. 이상 기후로 인한 예상치 못한 기록적인 폭우 탓에 ‘물 폭탄’이란 용어가 자주 쓰인 지 오래이지 않은가.

이제는 폭우 피해를 비롯한 국가 재난 대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하다. 호우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빈도까지 증가하는 추세지만, 대비책은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운데 피해 규모가 커지는 수해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더 이상 복구에 급급한 뒷북 행정이나 일회성 처방은 안 된다. 수도권에 115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듯이 예상치 못한 폭우에 미리 대비할 때다. 기후·방재 전문가들은 방재 성능 목표를 조정하는 주기를 현재의 5년보다 단축해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치수 기준을 높여 적어도 100년 빈도의 집중호우에 대비한 방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와 광역시·도가 귀를 기울일 만한 최선의 치수 대책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앞으로 지하 빗물 저장고 같은 방재시설 확대와 용량 증설을 위한 예산 확보, 구체적인 대책 실행 등에 집중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슈퍼컴퓨터와 기상 레이더 등 첨단 과학기기의 힘을 빌려 기상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치수는 예나 지금이나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기 위해 충실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시간이 지나면 수해가 남긴 고통이나 교훈을 잊어버리기 일쑤인 안전 불감증이 물 폭탄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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