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손 들어준 황정수 판사에 관심…주호영 "편향성 있어" 주장
정치·언론 가처분 다수 맡아…강용석 배제' 선거 TV토론 불허
법원이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제동을 걸면서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을 인용 결정한 황정수 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가 주목 받고 있다.
26일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실은 재판장 성향 때문에 우려하는 얘기가 사전에 있었다"며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성이 있고 이상한 결과가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 된 것 같다. 나는 안 믿고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비상상황인데 재판장이 아니라는 이런 판결이 어디 있나"라고도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황 수석부장판사는 순천고,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사법연수원(28기)을 수료했다. 광주지법과 인천지법,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뒤 지난해부터 서울남부지법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올해 수석부장판사가 됐다.
황 수석부장판사는 최근 정치권과 언론 관련 가처분 사건을 다수 맡은 바 있다.
올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강용석 경기지사 후보의 신청을 받아들여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양당의 후보만 참여하는 TV 토론을 금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황 수석부장판사는 무소속 후보는 15%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야만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정한 한국방송기자클럽 규정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을 권리'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 자의적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인천 강화군수와 충남 태안군수 등의 예비후보들이 지방선거 공천 결과에 반발하며 낸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국민의힘의 결정을 뒤집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관련 보도 삭제 사태를 다룬 한 KBS 시사 프로그램 방송을 금지해달라는 호반건설 측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화제가 됐다.
당시 황 수석부장판사는 "기사 57건이 아무런 설명이나 논의도 없이 일요일에 전격 삭제됐는데 그 자체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고, 그 문제를 취재·방송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의 측면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KBS 방송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일하던 2020년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이미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폭력의 주체인 국가에 별도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고, 선로에서 작업을 하던 중 열차에 치인 노동자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편 황 판사는 이날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둘 정도의 비상상황은 아니며,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판단해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국민의힘 당헌 96조 1항은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의 해소를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전 대표 측은 해당 규정에 따라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는 당 사무처에서도 궐위가 아니라 '사고'로 결론내렸고, 사퇴를 선언했던 배현진·윤영석 등 최고위원들이 그대로 8월 2일 표결에 참여하는 등 최고위의 기능도 상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당헌 27조 3항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궐위 시 30일 이내 전국위에서 후임자를 선출하게 돼 있으므로 결원을 보충하면 된다는 것이 이 전 대표 측 입장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측에선 당 대표 2년 임기 중 6개월 정지는 '궐위'에 준하는 상황으로 봐야 하고, 최고위도 구성원 9명 중 일찍이 사퇴한 김재원 최고위원 외에도 배현진·조수진·윤영석·정미경 최고위원 등이 연이어 사퇴해 '4인 이하'가 됐으므로 기능 상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출직 최고위원이 한 번에 여러 명 사퇴했다면 후임자를 선출해 보충할지, '비상상황'으로 보아 비대위를 둘지는 정당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판사는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전국위 의결 중 비대위원장 결의 부분은 당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민주적인 내부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당원의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기관 및 집행기관을 가져야 한다는 정당법에도 위반되므로 무효"라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그러면서 당헌 96조 '비상상황'을 "당 대표 또는 최고위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당헌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위 기능을 회복할 수 없거나 회복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비상상황에 준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당 대표 궐위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상실과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일이 발생해 당의 의사결정 등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당의 의사결정에 무리가 없고 ▲ 8월 2일자 최고위 의결이 이뤄지는 등 최고위원회 기능이 유지됐으며 ▲ 당헌에 따라 전국위에서 최고위원을 선출해 기능을 회복할 수 있으므로 비대위 설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측에선 지난 5일 상임전국위에서 당의 현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보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비상상황이 맞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임전국위는 최고위 기능 상실이나 비상상황의 의미에 대한 정의나 설명 없이 당 대표 사고와 최고위원 사퇴가 비상상황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했는데, 이는 해석이 아닌 적용에 관한 의견에 불과하고 그 전제에 해당하는 해석이 없어 효력에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상임전국위가 당헌 96조 해석뿐 아니라 비대위 설치까지 결정한 결과가 되었는데 당헌에 비대위 설치의 주체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100인 이내로 구성되는 상임전국위에 비대위 설치 결정 권한이 없음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당의 내부 의사결정이라도 정당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는지 여부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정당의 활동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고 정당은 정치적 조직체인 탓에 그 내부조직에서 형성되는 과두적, 권위주의적 지배경영을 배제해 민주적 내부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규제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 측 변호인단은 이날 법원의 결정이 나온 직후 입장문을 내 "사법부가 정당 민주주의를 위반한 헌법파괴 행위에 내린 역사적인 판결"이라며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사퇴하지 않은 최고위원으로 최고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며, 사퇴한 최고위원 자리는 당헌에 의해 선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측은 "비상 상황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위법"이라며 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