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까투리’ 권정생 작가의 따뜻한 동화나라 속으로
경북 안동시에서 고 권정생 아동문학가 흔적 만나기
폐교 활용한 동화나라와 선생 살던 집 있는 조탑마을
체험거리 가득한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도 가볼 만
고 권정생(1937~2007) 아동문학가. 그가 쓴 <몽실 언니> <강아지 똥>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도 선생의 유작인 <엄마 까투리>가 원작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도 8일 개봉한다.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 선생의 흔적을 경북 안동시에서 만났다.
■권정생 선생의 삶과 문학이 담긴 동화나라
푸른 나무 사이로 난 계단은 동화나라로 가는 길이다. 노란색 건물 외벽에는 민들레를 품고 있는 '강아지 똥'이 붙어 있다. 잔디밭 곳곳에서는 까투리 가족과 몽실 언니를 만날 수 있다. 동화책 속에서 주인공들이 튀어나온 듯하다.
‘권정생 동화나라’는 폐교한 일직남부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유언장, 책상, 소반, 일기장 등 선생의 주요 유품과 저서 등이 전시돼 있다.
권정생 작가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1946년 해방을 맞아 귀국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1955년 부산에서 재봉기 상회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때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1966년 콩팥과 방광 제거 수술을 받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변 주머니를 달고 살았다. 1968년 안동의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글을 쓰며 5년을 살다가, 1983년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흙집을 짓고 작품을 쓰다가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동화나라 복도에는 권정생 작가의 연보가 자세히 전시돼 있다. 선생의 글에 정승각 작가가 그림을 그린 <금강산 호랑이> 원화전도 열리고 있다.
“어느 날 정생이랑 길을 가는데 갑자기 정생이가 쪼그리고 앉더니 누나 강아지 똥 속에서 민들레가 피었네요, 그러데요. 한참을 들여다보데요. 그때 강아지 똥 이야기를 생각한 것 같아요.” 권정생 큰누나 증언이다.
<강아지 똥>은 1969년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에 당선된 단편 동화이다. ‘국민 그림책’이라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진 그림책 <강아지 똥>은 그 후 27년이 지난 1996년 출간된 것이다. 전시관에서는 <강아지 똥> 친필 원고가 있다.
사실 전시관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유언장’이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선생의 삶과 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동화나라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방이 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설치된 미끄럼틀, 동화책, 장난감, 드레스, 기다란 뱀 쿠션까지 ‘키즈 카페’ 같다.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작고 낮은 흙집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5km쯤 떨어진 곳에 선생이 살던 집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안동 조탑동 5층 전탑’이 있는 마을이다. 통일신라시대 벽돌로 건조한 이 전탑은 현재 보수 공사 중이라 볼 수는 없다. 전탑 앞 공터에 주차하고 천천히 마을 길을 걸어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선생의 집은 마을 가장 안쪽에 있다.
‘정말 여기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선생의 집은 작고 검소했다. 집 앞에 지어진 공중화장실이 화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이다. 하지만 마당의 나무만큼은 풍성했다. 키는 작지만 품은 넓은 그런 나무였다.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서 바라봐도 선생의 집은 참 낮았다. 그 집은 선생이 <몽실 언니>를 써서 받은 인세에 돈을 조금 보태 지었다. 마을 청년들이 터를 닦고 벽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선생은 해거름이면 집 뒤 빌뱅이 언덕에 올라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봤다고 한다.
하루 글을 쓰면 이틀은 누워서 쉬어야 하는 아픈 몸이었지만 선생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곳의 작은 방에서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한티재 하늘> 등을 썼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라고 했던 그의 말과 꼭 맞는 검소한 삶이었다. 주민들이 사는 곳이니 조용히 마을을 둘러봤다. 짧지만 정겨운 돌담길도 있고 벽화도 있다.
안동 시내에 있는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유물 없이 디지털 콘텐츠로만 채워진 국내 최초 디지털 박물관이다. 이곳에선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를 볼 수 있다. 매일 오전 11시 상영한다.
박물관에서는 안동의 역사·자연·건축·전통문화를 게임하듯 즐기면서 배울 수 있다. 봉제사 접빈객, 안동 차전놀이, 안동 문화 백경을 VR로 체험할 수 있고, 대형 키오스크와 스크린으로 안동 문화재를 생생하게 둘러볼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을 기단·기둥·지붕 세 가지를 조합해 직접 지어볼 수 있는 ‘나도 도편수’ 공간도 재미있다.
안동지역의 베틀노래, 삼삼기 노래를 듣는 ‘옛 소리’ 코너에서는 ‘~했니껴’로 끝나는 구수한 안동 사투리도 들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놋다리 연주놀이, 하회탈춤 배우기, 장원급제 놀이, 월영교 달걀불놀이 등 전통문화를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거리가 가득하다. 안동찜닭골목 인근에 있어 묶어서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여행 팁: 경북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동화나라’의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은 휴관. 관람료는 없으며,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어 주차 걱정도 없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은 조탑리 5층 전탑을 찾아가면 쉽다. 마을 안쪽으로 차가 진입하기 어려우니 전탑 앞 공터에 주차하는 게 좋다. 안동시 서동문로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입장은 오후 5시 30분에 마감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