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비 내야하는지 몰라 연체... 물어볼 사람도 없어요"
[창간기획-세상에 홀로 선 보호종료아동] 1. 다시 외톨이가 된 청년들
퇴소 전 ‘자립 교육’ 잘 기억 안 나
사소한 문제도 해결 못 해 좌절감
두려움과 외로움 홀로 극복 설움도
“심리적 안정감 주는 다양한 정책을”
세상 연착륙하게 지속적 관심 필요
만 18세의 나이로 세상에 홀로 서는 보호종료아동. 시설에서 단체 생활을 하며 보호받던 이들은 갑작스레 주변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 자신을 돌아보며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들은 시설 퇴소 이후 정부로부터 지원을 어떻게 받는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묻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정서적 결핍감에 휩싸이게 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까지 주변에 작지만 든든한 힘이 돼 줄 사회적 연결망이 이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다.
부산 사상구 한 그룹홈에서 생활하다 올 2월 자립을 시작한 김지민(가명·18) 씨는 자취생활 중에서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고 털어놨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룹홈에서 생활한 김 씨는 올 2월 부산진구에서 자립을 시작했다. 김 씨는 부산의 한 전문대학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20대 때 미용기술을 배우고 창업 자금을 마련한 뒤 30대에는 자신의 미용실을 차리는 게 김 씨의 꿈이다. 하지만 김 씨는 평소 4~5명이 함께 생활하던 그룹홈에서 나와 혼자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쩍 외로워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는 빨리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막상 자립을 준비하다 보니 집을 구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모르는 것투성이라 많이 불안했다”면서 “혼자 살게 되면서 선뜻 물어볼 사람이 없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고 말했다.
실제 김 씨는 자립 이후 도시가스요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 4개월가량 요금을 미납하기도 했다. 자취를 시작한 지 한 달째인 올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고통을 홀로 이겨내야 하는 설움도 겪었다. 김 씨는 “퇴소 전에 자립교육을 받긴 하지만 실제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스요금 납부와 같이 사소한 문제도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눈앞이 캄캄해지면 그룹홈 선생님께 연락했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될 경우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룹홈 선생님께 연락했다”며 “먼저 자립을 시작했지만 모르는 게 많은 친구도 있고 간단한 정보조차 물어볼 사람이 없는 친구도 많다”고 곱씹었다.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 2년 차인 하지은(가명·20) 씨도 6명이 생활하던 시설에서 벗어나 혼자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섭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외로움에 하 씨는 자립 이후 6개월간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생활했다. 하 씨는 “대학에도 갔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녀야 해 힘이 많이 들었다”면서 “코로나19 탓에 비대면 수업을 이어오다 학교에 애정이 없어 6개월 정도만 다니고 자퇴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립정착금 강화와 같은 경제적 지원이나 보호연령 상향 같은 정책도 중요하지만, 자립에 나선 보호종료아동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 씨 역시 정서적 유대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의 경우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등을 하려고 할 때 뒤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다 있지만 저를 포함한 보호종료아동은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다”면서 “재정적인 지원도 강화돼야 하겠지만, 살아가면서 홀로 남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시 아동청소년그룹홈협회 이은희 협회장은 “시설이나 그룹홈처럼 공동 생활을 오래 하다 홀로 생활에 나서면 시간 관념과 같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의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해 대학공부를 중단하게 되거나, 외롭다는 이유로 학업에서 중도하차하는 사례를 쉽게 만날 수 있다”면서 “정부가 정착지원금만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고독하지 않고, 주변과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세상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