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
태풍에 큰 상처 입은 포항… 동해안 밀집 원전은 괜찮나
원전 운영에 가장 큰 위협은 ‘정전’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 대표 사례
지진으로 전기 끊겨 모든 시설 손상
태풍 ‘힌남노’, 포항제철소 강타
변전소 전기 배전시설 등 침수
완전 정상화까지 6개월 이상 소요
괴물 태풍·물 폭탄 등 이상기후
매년 반복되며 강도도 점점 세져
국내 18개 원전, 동해안에 몰려
태풍 상륙 경로여서 안전성 위협
원전 사고, 가공할 만한 피해 입혀
방사성 물질, 대기·해양 계속 방출
안전 위해 과유불급 정신까지 필요
“모든 전력을 상실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1·2호기 원자로를 함께 관리하는 중앙제어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계측기가 흔들렸다. 붉은 램프, 흰색 램프, 노란색 램프 등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깜빡이고 벨이 윙, 윙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화재경보기도 울렸다. 한번 껐다 켜자 경보기가 멈췄다. 오후 3시 27분 쓰나미 제1파, 오후 3시 35분경 제2파가 후쿠시마 제1 원전에 밀려들었다. 해발 4m 높이에 설치된 비상용 해수펌프를 삼키고 10m, 그리고 13m 위까지 솟구쳐 올라와 원자로 건물과 터빈 건물을 덮쳤다. 1·2·4호기는 내부 비상용 배터리로 움직이는 직류전원도 모두 상실했다. SOB-스테이션 블랙아웃, 교류전원 완전 상실이다. 모두 말을 잃었다.” 일본 아사히신문 후나바시 요이치 전 주필이 저서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의 진상〉에서 사고 상황을 묘사한 장면이다.
원전 사고… 위험한 건 전력 상실
원전 운영에 가장 큰 위협이 정전이다. 지진으로 전기가 끊기고, 낮은 지대에 설치돼 있던 비상용 발전기까지 바닷물에 침수되면서 원전 내 모든 전기 시설이 손상됐다. 후나바시 전 주필은 “후쿠시마 사고 당시 비상 매뉴얼북에는 교류와 직류 전원을 모두 상실해 전기가 일절 들어오지 않는 상황은 아예 없었다”면서 “직원들은 암흑천지의 중앙제어실에서 감과 전화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고 서술했다. 전기가 끊기면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 펌프는 모두 멈췄다. 치솟는 원자로의 열기에 냉각수가 증발하면서 노심 온도가 1200도까지 상승했다. 열기를 이기지 못한 수백 개의 연료봉이 녹아내렸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수소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격납용기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압력밥솥 터지듯 폭발했다. 상상하기 힘든 방사성물질이 대량으로 대기와 바다로 대거 방출되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모두 쓰나미에 의한 침수로 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포항제철 전체 침수와 블랙아웃
경북 포항시 포항제철소 공장 안으로 해병대 상륙함이 출동했다. 지난 6일 새벽 ‘괴물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 일대에 500mm의 기록적인 폭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면서 오전 6시 20분께 냉천이 범람을 시작했다. 강물은 포스코 내 발전소와 제2문에 위치한 변전소 전기 배전시설을 덮친 뒤 공장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변전소가 침수되면서 공장 전체가 블랙아웃에 빠졌다. 오전 7시.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포항제철소 대부분이 흙탕물에 잠겼다. 이어 만조를 타고 바닷물까지 공장 안으로 밀려들었다. 예고된 태풍임에도 불구하고, 1973년 쇳물 생산 이후 49년 만에 처음으로 포항제철소 고로가 모두 멈춰 섰다.
포항제철소는 정전 사태를 풀기 위해 추석 연휴 기간에 하루 120만 원 일당까지 지급하면서 복구에 올인했다. 용광로는 겨우 재가동하기 시작했지만, 국내 유일의 전기강판과 스테인리스 등 최첨단 열연공장의 피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완전 정상화까지를 두고 산업부는 최대 6개월 이상, 포스코 본사는 3개월, 현장에서는 주요 전기 설비가 설치된 지하가 물에 잠겨 6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500년 만에 한 번 내릴 폭우와 만조가 겹쳤던 불가항력적인 부분과 냉천 상류 오어지의 홍수 조절 기능 부재, 냉천 하천정비사업과 구조물 문제, 포스코와 포항시의 불협화음 등 인재가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만 난무하고 있다. 확실한 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 이변과 안일한 준비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재해라는 점이다.
‘괴물 태풍’ 가능성 점점 높아져
힌남노는 기후 관측 사상 처음 있는 태풍이었다. 태풍은 주로 적도 인근에서 발생하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북서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힌남노는 최초로 북위 25도 이북에서 발생해 반시계 방향으로 남서진하다가 급격히 북상하면서 다른 열대성 저기압을 흡수하며 ‘태풍 먹는 태풍’으로 커졌다. 제주도 한라산을 지나면서 “하늘이 뚫렸다”고 할 정도로 1년 내릴 양에 버금가는 1059mm의 비를 쏟아붓기도 했다.
걱정스러운 점은 괴물 태풍과 물 폭탄 등 이상기후 현상이 거의 매년 반복되고, 강도가 점점 세진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도 파키스탄은 폭우와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기후 전문가들은 “예전에는 100, 200년에 한 번 오던 폭우가 이제는 2, 3년마다 찾아올 수 있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1년에 몇 번이고 ‘괴물 태풍’을 겪을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고 지적했다.
태풍에 멈추는 원전, 과연 괜찮을까
한반도 태풍의 상륙 경로인 동해안을 따라 18개 원전(고리 5, 새울 2, 월성 5, 한울 6)이 밀집해 있다. 원전은 냉각장치에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입지한다. 이에 따라 태풍과 폭우, 해일 등에 따른 침수로 발전소 내부뿐만 아니라 송전선로 문제로 인한 외부전원 공급 차단 등 다양한 사고의 변수가 상존해 있다. 게다가 기존 원전은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 적치장 역할까지 맡고 있어 예상치 못한 사고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태풍 힌남노 반경에 있었던 신고리1호기 원자력발전소가 수동 정지됐다. 신고리1호기는 당시 강풍으로 원전 터빈발전기에 영향을 줬고, 한수원은 전력 설비 이상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했다. 태풍으로 인한 원전 가동 중단 사례는 과거에도 빈번했다.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이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고리원전 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 월성 2~3호기 등 8개의 원전에서 전력 계통 문제가 발생해 잇따라 가동이 중단됐다. 2003년 9월에는 태풍 매미로 고리 1~4호기와 월성 2호기가 동시에 정지되는 사고가 있었다.
물론, 해일 등에 대한 안전 조치도 차츰 이뤄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3년 고리 원전의 콘크리트 해안 방벽을 기존 7.5~9.5m에서 10m, 총연장 2.1km로 증축하는 등 안전 설비를 강화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2018년 “최고 해수위가 17m에 이를 수 있어 10m 방벽으로는 해일 등으로 인한 파고를 막지 못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운에만 맡길 수 없는 안전
기상청은 힌남노 내습을 앞두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피해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포항제철소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공장 전면 침수와 3~6개월 조업 중단 사태를 겪고 있듯이, 원자력발전소도 이상 기후에 100% 안전하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운 지경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을 총괄했던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저서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에서 “화력발전소 화재 사고는 언젠가는 연료가 다 타버려 사고가 수습된다”면서 “이에 비해 원전 사고는 제어할 수 없는 원자로를 방치할수록 사태는 악화되고, 연료는 타지 않고 방사성물질을 대기와 해양으로 계속 방출한다”고 밝혔다. 간 전 총리는 “지금이라도 같은 사고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면서 “원전 사고는 한 민간 기업이 완전히 책임을 질 수 없고, ‘원전은 비용이 저렴하다’는 주장마저 붕괴했다”고 강조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마주 선 인류. ‘타지 않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는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모자람이 없다. 기상은 인간의 상상 이상으로 엄혹해지고 있고, 원전 사고는 단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