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밥 한 끼만 먹어도 책을 읽으면 충분히 배부르죠”
부산 사하구 독서광 오광봉 씨
90세에도 일하며 다양한 책 섭렵
장서 5000권 보유에도 책 구매
“행복은 재물 아닌 책 속에 있어”
“행복은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습니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거주하는 오광봉(90) 씨는 물질적 행복보다 정신적 풍요로움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 씨는 사하구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40여 년 동안 신문 배달을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집 책장에는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 5000여 권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2014년 한 TV 프로그램에 오 씨의 이러한 독서 생활이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 씨는 이북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피난을 오면서 부산에 정착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이 그의 학력 전부다.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신문 배달과 가내수공업을 하며 번 돈으로 책을 사 읽기 시작했다. 일을 하다 다쳐 오른손을 못 쓸 때도 그의 독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고 싶을 정도로 배움에 한이 맺혔다. 플라톤의 <향연>부터 공자와 제자의 대화를 담은 <논어>까지 동서양 고전을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며 “책을 한 권 완독하니 추가로 읽어야 할 책들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났다. 책을 읽고 저자의 사상과 나의 생각을 비교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구순의 오 씨는 젊을 때와 다름없이 책 읽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는 철학, 점심은 수필, 저녁에는 인문학으로 마무리한다. 서재뿐만 아니라 침대 머리맡에도 시집을 비롯한 문학 책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이미 5000여 권의 장서가 있지만 오 씨는 지금도 생활비 대부분을 책 구매에 쓴다. 그는 “책 읽기에 끝이 없다. 책을 사러 남포동과 서면 서점을 찾을 때 발걸음이 제일 가볍고 행복하다”며 “밥을 한 끼만 먹어도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배부르다”고 말했다.
최근 사하구 감천동 주민들은 동네 '스타'인 오 씨의 건강이 혹여 나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가 신문 배달도 하지 않고 아미성당 신부님의 지원으로 2018년부터 운영하던 북카페도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4개월 전 몸이 좋지 않아 40여 년 이어오던 신문 배달을 그만뒀다. 그래도 꾸준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낮에는 1~2시간 정도 신문 판촉을 하고 있다. 그는 “발이 휘어 오래 걸을 수가 없어 신문 배달을 그만뒀지만 일하는 자체가 즐거워서 신문 판촉은 계속하고 있다”며 “북카페는 전세 기간이 끝나 문을 닫게 됐다. 코로나19 이후로 독서 모임도 중단돼 지금은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대화할 사람이 적어져 아쉽다고 전했다. 오 씨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더 즐긴다”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머릿속에 지식을 입력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리가 좋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금처럼 일을 하면서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싶다”며 “많은 사람이 독서를 통해 정신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