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 부산 역사의 물결 함께한 두 작가
2022 부산비엔날레 주제 ‘물결 위 우리’
11월 6일 막 내려…부산과 인연 두 작가
해방·한국전쟁 격변기 그려낸 80대 화가
‘입양 산업’ 네덜란드 입양 작가의 영상
‘물결 위 우리’를 주제로 한 2022 부산비엔날레는 11월 6일 막을 내린다. 부산비엔날레 참여 예술가 중 도시 부산과 역사의 물결을 함께한 두 작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우암 작가와 장세진 작가. 두 사람의 삶과 예술 작업은 한국전쟁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 1938년생 오우암
오우암 작가는 50대 후반에 전업 작가가 됐다.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30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뒤였다. 미대에 다니던 딸(오소영 작가)이 쓰던 유화 물감과 캔버스가 제2의 인생을 열어줬다. 수녀원 재직 시절에도 틈틈이 합판에 그림을 그렸다는 그의 작업은 진솔하다.
50대 후반 그림 시작한 ‘늦깎이 화가’
“한국전쟁 당시 관찰·기억 그림 옮겨”
깡깡이 마을, 자갈치, 범일동, 감만동
“56년 살았던 부산의 공간 곳곳 등장”
해방을 축하하는 모습, 시골 마을의 통학생, 직업소개소 앞에 모인 사람들, ‘썸싱 스페셜’ 광고판 아래 앉은 우울한 노동자, 손수레와 기차를 미는 일꾼들…. 한국전쟁 전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부산현대미술관 지하 1층에 전시됐다. “한국전쟁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그 기억과 여러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나 자신의 이야기는 작품으로 그리지 못해요. 대신 당시의 관찰과 기억을 위주로 그림을 그려요.”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난 오 작가는 유년기를 전라도에서 보내고 청년기엔 서울에 잠시 머물렀다. “부산에서 56년 동안 살았죠.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이라 그림에 여러 공간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림에 등장하는 부산의 장소는 어디일까? 오 작가는 “영도 앞바다, 깡깡이 마을, 자갈치, 범일동 구름다리, 감만동 옛날 적기 일대 등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작가는 현재 경남 함양에 살고 있다.
그림에 기차역이나 철길도 자주 등장한다. “격변의 시기에 떠나는 사람들도 돌아오는 사람들도 기차를 이용했으니, 철도에는 어떤 애절함이 있어요.” 작품 ‘유년 시절’ 속 기차는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던 열차이다. ‘가락국수’의 기차역은 대전역, ‘철길 건널목’의 배경은 감만동 적기이다.
차분한 색상과 단순화된 선. 그림은 역경의 시대를 보여주지만, 그 풍경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전쟁에 다리 잃고 풍선 파는 사람도 있고, 시절이 우울해도 나발 불고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죠.” 상대적으로 최신작인 2010년 전후 작품에서는 청색 계열이 많이 사용됐다. “예전 작품에서 사용하던 색깔을 좀 더, 잘 내 보고 싶어요. 영산강의 갯벌을 다시 그려보고 싶어서 제목은 정해뒀어요.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때)’이라고. 이번에 부산비엔날레에서 (나를) 불러주고 잘 전시해 주니 고마워요.”
■ 1977년생 장세진
부산에서 태어난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작가는 한국계 네덜란드인, 해외 입양아이다. 부산비엔날레에 선보인 ‘4개월 4백만 광년’은 입양 산업의 이면에 존재하는 식민 지배의 서사를 풀어낸 설치 영상 작품이다. 한국의 입양 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번창하기 시작했다. 작품 제목 속 ‘4개월’은 법적으로 입양이 허용되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최소 사 개월 동안 한국 ‘고아원’에 머물도록 하는 법을 가리킨다.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나 해외 입양
영상 설치 작품 ‘4개월 4백만 광년’
초국가적 입양 산업과 식민 지배 다뤄
“한글 배너 이해하는 관람객 반가워”
영상은 출산을 앞둔 아기가 엄마의 배 속에 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장 작가는 “작품 속 아기는 입양 과정을 겪어야만 했던 모든 아이를 대변하는 존재”라고 했다. 이야기는 네덜란드 군인들이 참여했던 한국전쟁으로부터 아시아에 대한 초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4분 길이의 영상을 감상하다 보면 초국가적, 초인종적 입양 산업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시공을 관통하는 샤머니즘적 치유의 여정’이라고 불린다. 장 작가는 식민지화 과정에서 토착민과 수천 년에 걸친 샤머니즘 전통이 말살당한 현실을 지적했다. “한국의 문화와 샤머니즘은 전반적으로 풍부한 우주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에는 샤머니즘적 연구와 예술적 실천을 담고자 했어요.” 영상에는 ‘아리랑’ 등 여러 노래가 등장하는데, 노래와 연주는 부산에서 입양된 얀 반덴 부르크 씨와 레슬리 마에스 씨가 맡았다.
부산현대미술관 지하 전시장에서는 영상 옆 ‘어머니’ ‘아버지’ ‘우주’ ‘삼라만상’ 등이 새겨진 배너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상과 산, 별, 해와 달이 적힌 배너들은 가족과 문화 그리고 조상으로부터 단절되어야만 했던 사람(입양인)들을 다시금 연결하고 응원하기 위해 주위의 힘을 빌리고자 함을 상징합니다. 유럽에서도 이 작품을 선보였는데, 실제 한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보게 돼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관람객들이 실제 글을 이해하기에 (입양인을 응원하는) 힘이 더 강력해졌다고 느낍니다.”
장 작가는 이번 작품이 장세진 개인의 이야기나 부모를 찾는 입양아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예술가로서의 저는 입양에 관련된 식민화의 모든 거짓을 밝혀내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유색인종 입양인들이 북반구에서 인종화되고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입양인들은 자신이 (입양을)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감사해야 한다’는 시각에 맞서야 합니다. 한국과 입양 수용국, 양쪽에서 이런 차별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장 작가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시작된 한국의 초국가적이고 초인종적 입양 산업은 심각한 인권 침해와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아동 납치, 위조된 서류를 통한 인신매매, 아이들을 포기하도록 부모를 압박하고 아이들을 고아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일들이 성행해왔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 모두 자녀(입양아) 보호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 사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현재 덴마크 한 단체는 한국 정부에 우리의 입양과 관련된 범죄를 조사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사과를 기다리고 있는 20만~30만 국민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장 작가는 부산비엔날레 참가 제안을 받았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출생지를 마주하고 어린 시절 머물렀던 시설을 방문하는 일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작업을 한국 특히 부산에서 선보일 수 있음에 성취감을 느꼈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분 중 1977년 1월 9일 혹은 19일쯤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신문사로 연락해주세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