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신문 왕국' 일본 신문의 디지털 전략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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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디지털미디어부장

신문 왕국 일본의 디지털 전환
종이 신문의 시대 이제 저물어
청년 독자 찾기 힘든 상황 도래
모바일 중심 디지털 전환 과제
가장 중요한 건 지역중심 사고
지역 우선주의 기사 발굴 혼신

“50대 이하의 사람들은 신문을 잘 읽지 않습니다. 뉴스는 모바일이나 PC를 통해 공짜로 보죠.”

익숙한 내용이지만, 한국 상황이 아니다. 최근 방문한 〈서일본신문〉의 디지털전략국 사카이 국차장이 한 발언이다. “1997년 정점이었던 일본의 신문 구독자 수가 2022년 현재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신문 대신 야후 뉴스 서비스를 찾아 봅니다.”


일본은 세계 유료 일간지 발행 부수 상위 10순위에 자국에서 발행하는 4대 일간지가 밀려난 적이 없는 ‘신문 왕국’임은 여전하지만, 정작 일본에서 신문을 만드는 이들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 독자의 이탈이다. 그리고 구독 감소다.

후쿠오카에서 탄 지하철에서도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인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대중교통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갔던 일본의 지하철에서 아쉽게도 신문을 읽는 이는 볼 수 없었다. 청년들은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쳐다봤고, 일부 책을 읽는 사람은 있었지만, 신문을 보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한때 부산의 지하철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신문을 읽는 이들을 꽤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석간 발행 때였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며 그날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읽다가 내릴 때는 슬며시 지하철 선반 위에 떨어지지 않게 잘 올려 두곤 했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곁눈질로 ‘무슨 기사가 났나?’ 하고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는 재미가 은근했다. 신문은 내리기가 무섭게 다음 주자가 차지해 갔다. 어느 날부터 두고 내린 신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어졌다. 종착역까지 선택받지 못한 신문은 청소원이 모아 폐지로 처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서일본신문〉 관계자의 고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디지털 온리’를 표방한 〈부산일보〉는 네이버 구독판을 활용해 독자에게 24시간 다가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일본신문〉은 2021년부터 독자 앱을 만들어 디지털 신문 전쟁에 뛰어들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직도 생겼다. 크로스미디어부다. 신문과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들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반영된 부서 명칭이다.

“디지털과 종이 신문에 똑같은 가치를 두고 운영합니다. 지면 제작을 담당하는 편집국과 미래에 증가할 디지털 비중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운용하는 부서입니다.” 신문 왕국 일본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실감할 수 있는 일본 언론인의 발언이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 그들은 고민했다. 포털 사이트 야후에 기사를 제공하고 받는 금액이 너무 적다는 것. 별도의 모바일 앱을 만들고 유료 독자를 모집하고 있지만, 종이 신문만큼 획기적이지 않다는 것. 사회 전반에서 신문의 신뢰도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 등이다.

1877년 창간해 후쿠오카시와 규슈 전 현에 총 44개의 지사가 있고, 미국 워싱턴과 중국 베이징, 태국 방콕, 한국의 서울과 부산에도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는 〈서일본신문〉. 조간 발행 부수만 여전히 45만 부가 넘는 일본 최대의 블록지(지역연합지)지만, 시대의 변화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실험을 마다치 않고 있었다.

역사와 배경이 다른 한국과 일본의 언론사이지만, 작금의 시대 변화 앞에서 디지털이라는 공동의 과제로 마주 앉은 이날 양국 지역 언론인들은 공감대를 쉽게 형성했다.

가장 공감한 말은 지역의 천착이다. 서일본 규슈 지역의 소식은 오직 우리를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주 독자층 역시 후쿠오카 출신을 대상으로 삼았고, 캐치프레이즈도 ‘후쿠오카의 응원단’으로 정했다. 부울경 독자를 기반으로 하는 동남권 최대 신문 〈부산일보〉와 일치했다.

독자 중심의 신문으로 거듭나자는 목표도 우리와 일치했다. ‘당신의 특명 취재반’이라는 기동취재팀은 〈부산일보〉가 그동안 다양한 형태로 운영했던 독자 우선주의 조직과 일치했다. 물론 디지털 시대를 맞아 유리해진 측면도 있었다. 새로운 기사 쓰기가 가능해진 것. 기사 분량과 사진 숫자에 제약 없는 기사 작성, 댓글 등을 통한 쌍방향 소통, 실시간 소식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속보성 등이다.

“9월 14호 태풍 난마돌이 규슈에 상륙했을 때 불과 몇 시간 만에 45개가 넘는 기사를 배포했습니다. 게재한 사진도 50장이 넘었고요.” 태풍이 아니라 디지털의 위력을 실감한 날이었다고 했다.

“서일본신문의 디지털 버전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서일본신문입니다.” 〈서일본신문〉의 디지털 목표에 관한 그들의 대답이다. 바야흐로 한·일 신문에 디지털 태풍이 상륙했다. 살아야 한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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