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10월의 마지막 밤
10월 31일(1517년)은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공표한 날이다. 그해 10월의 마지막 날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이유다. 루터는 교회의 비리와 부패를 비판한 내부 고발자로 찍혀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당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뒤 비로소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가 인정됐다(1648·베스트팔렌 조약). 종교개혁이라는 큰 폭풍은 이후 유럽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멀게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도 이와 연결돼 있다. 그 속에 종교전쟁을 비롯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숨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10월의 마지막 밤이 품은 피의 역사가 있다. 1961년, 진보 성향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등 언론인들이 5·16쿠데타 이틀 만에 체포된다. 조총련계 자금을 받아 신문을 만들면서 북한이 주창하는 평화통일을 선전했다는 죄목이었다. 10월 31일, 혁명재판소는 조 사장을 비롯한 신문사 간부들에게 사형과 징역형을 선고한다. 이후 조 사장만 사형이 최종 확정돼 두 달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체포부터 재판까지 모조리 엉터리였던 〈민족일보〉 사건은 47년이 흐른 2008년에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국인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대중가수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로도 기억된다.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1980년대를 뜨거운 청춘으로 보냈던 이들에게는 그 가사처럼 지울 수 없는 정신의 화인이 찍힌 노래다. 가수 이용은 군사정권에 의해 기획된 ‘국풍 81’ 행사로 데뷔한 이력이 있다. 이후 개인사 문제로 돌연 은퇴해 사라진 비운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숱한 곡절도 10월이면 늘 불리는 명곡으로의 등극을 막진 못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의 힘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한국인은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안게 됐다.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이틀 앞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150명 이상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핼러윈 데이는 원래 중세 켈트족의 풍습에서 비롯됐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평안을 빌고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나보다 남들을 위한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형식과 흥미의 문화만 남았다. 음산함과 기괴함을 주제로 즐길 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의 허허로움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영화 속 악몽이 아닌 현실이라서 더욱….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