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 ‘대형사고’ 경고 있었지만… 손 놓은 행정, 참사 못 막았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태원 비극은 예고된 인재

28일 밤 수만 명 운집 ‘위험’ 조짐
사람 넘어진 사진 SNS 등 올려
지자체, 대비 미흡 ‘사고’ 못 막아
불꽃축제 때와 상반된 대응 지탄
시민단체, 철저한 진상 규명 촉구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인 30일 경찰이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인 30일 경찰이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핼러윈 데이를 앞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2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는 전날에도 수많은 인파가 같은 지역에 몰렸던 사실을 고려하면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참사는 단일 사고 중 304명이 희생된 2014년 세월호 침몰 이후 8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사태라는 점에서 안전을 최우선 가치에 놓겠다는 사회적 다짐이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 핼러윈 축제는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라져서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태원에는 수많은 젊은 층이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됐다. 실제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 28일 밤에도 이태원에 수만 명이 운집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날 일부 이태원 방문자들은 수많은 군중에 떠밀려 사람이 넘어졌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압사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행정당국의 대응은 안일했다는 것이다.

해당 지자체인 용산구청은 27일부터 31일까지 핼러윈 기간 동안 특별 방역, 안전사고 예방, 거리 청결 확보를 위해 지난 27일 낮 2시에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방역지원반을 둬 방역·소독을 실시하고, 이태원 일대 식품접객업소 지도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민원대응반은 소음특별점검, 가로정비, 불법 주정차 단속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염두에 둔 안전관리 대책을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 또한 지난 8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 때와 대응이 상반된다는 점에서 지탄을 받는다. 당시 서울시는 2019년 행사 때 80만 명이 몰린 것을 고려해 올해 축제 때는 더 많은 시민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했다. 특히 관람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은 무정차 통과 또는 출입구를 임시 폐쇄조치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무정차 통과시켰어야 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경찰과 소방 인력을 이태원 일대에 충분히 배치했는지도 논란거리다. 경찰은 핼러윈 데이에 10만 명이 모일 것으로 전망하고 마약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단속 중심으로 200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30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태원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명복을 빌며, 황망하게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잃은 분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로 가자는 우리 사회의 다짐이 무색한 상황이 참담하다”며 “정부와 서울시는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대규모 사망사고가 발생하게 된 원인 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일깨울 수 있는 사고 현장 영상과 사진 공유, 혐오 표현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긴급성명을 내고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러한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학회는 또 “온라인상에서 나타나는 혐오 표현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현장에 있었던 분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가중시키고 회복을 방해한다”며 “이러한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