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징후 넘쳤건만… 경찰 “예견 못 했다”
행정당국 부실 대응 비난 확산
경찰 “매뉴얼 부재” 문제점 실토
사후약방문식 대책 내놓기 급급
용산구청은 안전 요원 투입 안 해
“당국 안일한 태도가 화 키웠다”
최소 154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로 국민적 비난이 행정당국과 경찰의 부실 대응으로 집중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은 참사 이후에야 매뉴얼 부재 등 문제점을 털어놨고, 일선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에 안전관리 인력을 단 한 명도 투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책임 회피식 방관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진다.
31일 서울 용산구청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밤 10만 명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에 용산구청은 약 50명의 인원을 투입했다. 이조차도 방역과 주정차 단속 역할에 그쳤다. 투입된 직원 중 안전관리 업무를 맡은 인원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사고 당일 이태원에 30명에서 많게는 50명 정도의 직원을 투입했다. 부서별로 직원을 투입하다 보니 이태원에 당시 구청 직원이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아직 확인 중이다”면서 “다만 안전관리 담당 인력은 한 명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청은 지난 26일 경찰, 유관 기관과 핼러윈 대비 회의를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도 안전관리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의 부실한 대처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이후 입장을 밝히는 자리에서 “주최자 없는 행사의 인파 밀집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었다”고 부실 대응을 사실상 인정했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이날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당한 인원이 모일 것은 예견했다”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일 이태원 일대는 4~5개 권역으로 나뉘어 관리됐지만, 하지만 사고가 난 골목 통제와 관련한 별도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핼러윈 기간 이태원처럼 주최자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상황에 대비한 경찰 매뉴얼 또한 이전까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홍 국장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관리 주체는 없으나 다중 운집이 예상되는 경우 공공부문이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지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공권력을 체계적으로 작동해 재발을 막는 데 목표를 두고 (매뉴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가 유례없는 상황이라 관련 지침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며 “이번에 관리 방안을 개선해보도록 하겠다”는 사후 약방문식 대책을 내놨다. 1000명 이상의 행사에 적용되는 안전 관리 매뉴얼은 있지만, 이태원처럼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엔 매뉴얼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안전 관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참사 직후 안일한 대응과 제도적 허점이 명확한 상황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은 논란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이태원 상인들은 이번 사고가 행정기관과 경찰의 방관에서 비롯된 '예견된 참사'라고 입을 모은다. 이태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 모(42) 씨는 “사고가 난 장소는 주말은 물론 매년 대형 행사 때마다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곳”이라며 “골목에 경사도 있어 평소에도 인파가 몰릴 때는 한 사람만 넘어져도 도미노로 몇 사람이 넘어진다. 안일한 태도가 부른 예견된 사고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도 행정당국의 책임 회피와 부실 대응을 지적하고 나섰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재난 사고 시 경찰과 행정기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질서 유지다. 수많은 사람이 대거 모일 상황을 예견했다면 골목 통제, 일방통행 유도 등 방법으로 인원을 분산시키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보호가 최우선 기능인 각 기관의 책임 있는 태도가 따르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