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태원 참사, 당국 안일한 대처가 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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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자 없다는 이유로 사전 대책 외면
위험 징후·당일 인파에도 안전 손 놓아

3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골목길에서 발생한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3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골목길에서 발생한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가 인재로 드러나고 있다. 사상자 확인과 치료, 장례 등 사태 수습과 사고 원인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계 당국의 무사안일한 자세가 사망 154명, 부상 149명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진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어서다. 이태원 핼러윈 행사 곳곳에서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고 조짐을 보였으나 구청과 경찰을 비롯한 유관 기관이 무대책과 무대응으로 일관해 화를 키운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8년이 지나도록 별반 달라지지 않은 안전 불감증에 한숨만 나온다. 정부가 책임을 통감해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안전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3일 전인 지난달 26일 용산구청과 경찰은 상인들과 가진 사전 간담회에서 안전관리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에서 핼러윈 행사에 10만 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작 논의된 안건은 코로나19 방역과 범죄 예방 대책뿐이었다는 게다. 인파를 관리하기 위한 안전요원 배치나 임시 대피로 설치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행사장을 포함한 이태원 일대는 경사지고 협소한 골목길이 많은 곳이다. 관할 구청과 경찰이 이런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당국이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에서 해방된 군중에 대한 안전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은 셈이다.

행사 당일의 대처도 큰 허점을 드러냈다. 구청과 경찰은 사고가 난 골목 입구와 근처 인도, 도로를 비추는 CCTV를 통해 엄청난 인파가 밀집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당일 지하철 이태원역 이용객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13만 명을 넘었으나 사람과 차량에 대한 통제는 없었다. 주최자가 없고 관(官)과도 무관한 비공식 행사이며, 대형 인명 피해까진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사고 전날 행사장에서 사람에 밀려 넘어져 다쳤다는 112신고가 평소의 1.5배에 달하고 사고 위험성을 알리는 SNS 게시물이 잇따랐다. 이 같은 위험 징후를 무시한 당국은 무책임과 안전 불감증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참사 다음 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건 아니다”며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상황 판단이 잘못되고 면피에 급급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부처 수장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생때같은 자식을 졸지에 잃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억장이 무너졌을 듯싶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후 조치로 5일 예정된 부산불꽃축제를 비롯, 각종 행사가 연기·취소되고 수습 작업도 원활하게 이뤄져 다행스럽다. 특히 수사 당국이 사고 원인과 책임자를 철저히 규명해 경각심을 고취해야 마땅하다. 완벽한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더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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