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 조치만 했어도” “설마가 화 키워”…안일한 대응에 분노·실망감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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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112 부실 대응… 시민 반응

경찰 내부선 수뇌부 잘못된 판단
현장 대응 시스템 문제 꼬집기도
꼬리 자르기 혈안 볼멘소리 나와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한 2일 오후 종로구 서울경찰청 입구 모습.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한 2일 오후 종로구 서울경찰청 입구 모습. 연합뉴스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난 경찰의 부실 대응을 질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의 부실한 대응 실태가 적나라하게 확인되면서 경찰 책임론이 큰 파장을 낳으며 확산하는 모양새다.

조용호(33·부산 해운대구) 씨는 “최초 신고가 접수됐을 때 경각심을 갖고 초동 조치만 취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거나 최소한의 피해로 끝났을 것”이라면서 “경찰이 당장 사상자가 없다고 향후 사고 발생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김옥자(67·부산 동래구) 씨는 “우리나라에서 반복되는 사고에서 드러나듯이 이번에도 설마가 화를 키웠다”면서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응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정 모(28·부산진구) 씨는 “참사 당시 이태원에 사람이 많아 통제가 어려웠다고 한다면 추가 인력 요청을 당연히 해야 했던 것 아니냐”면서 “현장에서 인력 요청을 했는지, 안 했다면 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부분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의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윤 청장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112신고 처리를 포함해 전반적인 현장 대응의 적정성과 각급 지휘관과 근무자들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도 빠짐없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잇따라 사과했지만 진정성에 의문을 표출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 모(41·북구) 씨는 “참사 발생 이후에 등 떠밀려 사과하는 식의 고위 공직자들의 대처가 아쉽고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부 시민들과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현장에 있던 지구대 대응이 미흡했던 것은 맞지만 경찰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과 현장 대응 시스템에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회사원 박 모(44) 씨는 “종국적으로는 현장 출동을 담당하는 지구대의 책임이 크지만, 코로나19 이후 더욱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만큼 경찰 수뇌부가 현장을 미리 파악하고 대응했어야 했다”며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112 신고와 현장 출동 등 경찰 조직의 대응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지구대 경찰관은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가 접수됐을 때 현장은 물론 112 상황실, 서울청 등에서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섰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사람이 많이 몰리는 현상이 대형 참사로 번지는 것을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는 없었겠지만, 대응 매뉴얼과 시스템이 적절히 갖춰져 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수뇌부가 일선 파출소의 근무 실태나 보고 체계를 도외시한 채 ‘꼬리 자르기’에만 혈안이 됐다는 볼멘소리도 경찰 내부에서 나온다. 부산의 한 번화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현실적으로 일선 경찰관이 경찰서나 기동대에 지원 요청을 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현장 직원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워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 2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기동대 협조를 받아 인원 통제가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10여 차례의 보고와 결재를 거쳐서야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며 “112 신고를 받고 대응하기에는 거쳐야 할 단계가 너무 많다”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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