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소방-행안부 지휘 체계 무너진 이태원 참사
첫 신고 이후 4시간 뒤에야 행안부 파악
공조 부재로 초기 대응 실패, 사태 키워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경찰-소방-행정안전부로 이어지는 긴급상황 대응 지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분초를 다투는 긴급상황에 무엇보다 먼저 가동되어야 할 정부의 핫라인 체계가 불통됐다는 것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2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112신고 이후 4시간도 더 지나서야 참사 사실을 처음 접수했다.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1시간 21분이 흐른 뒤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 경찰-소방-행안부 간 공조 체계는 완전히 실종됐다. 듣고서도 선뜻 믿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비상 상황이 발생해 경찰·소방 관서로 신고가 오면 행안부 종합상황실로 접수되고, 이후 사안에 따라 장·차관까지 보고 된다. 그래야 행안부가 컨트롤 타워로서 경찰·소방을 지휘해 종합 조치를 내릴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대응 체계가 이태원 참사에서는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일선 현장에서 손발을 맞춰야 할 경찰과 소방의 협조 체계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경찰청장이 최초 보고를 받기 전 소방 당국은 이미 소방 대응 1단계를 넘어 2단계까지 발령한 상태였는데도, 경찰 지휘부는 이를 알지 못했다. 희생자를 줄일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이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낸 게 너무나 뼈아프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허술한 정부 대응 체계에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경찰-소방-행안부의 공조 체계 부재에 대한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위급 상황에서 국가의 즉각적인 대응 체계 작동 여부는 곧바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번 참사 역시 이들 기관끼리 초기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와 발 빠른 현장 통제가 조금이라도 이뤄졌더라면 한 명의 희생자라도 더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지휘 체계는 사실상 먹통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8년이나 지났는데도, 우리의 대형 참사 지휘 체계는 아직도 수준 미달인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무얼 했는지 국민으로서 자괴감이 든다.
정부는 국민들이 이태원 참사에 분노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갇혀 압사하고 있다고 수차례나 신호를 보내도 경찰이나 정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사람이 쓰러져 죽어 가는데도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국민들 입에서 또다시 “이게 과연 나라냐”라는 말이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는 모든 국가 과제 중 단연 최우선 사항이다. 국가의 대응 체계 역시 크게 나아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이런 믿음은 또 깨졌다.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이다. 이를 만회하는 길은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외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