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포의 수출 화가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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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1의 무역항이자 최대 어항인 부산항.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7위 항만이다. 1990년대 중반엔 세계 3위까지 올랐다. 지금도 부가가치가 높은 환적화물 처리량은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한다. 올해는 부산항 개항 146주년이다. 이는 1876년 조선이 일제와 굴욕적으로 맺은 강화도조약에 따라 강제 개항한 것을 기점으로 한 계산이다.

조선 태종 7년인 1407년 자주적으로 단행한 부산포 공식 개항을 원년으로 삼자는 주장도 제기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개항이 일본 포용책에서 나온 자발적 조치라는 의미가 있는 데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는 까닭이다. 이대로라면 부산항은 개항한 지 615년째가 된다. 태종 때 지금의 북항 자성대부두 일대인 부산포와 함께 현재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동인 내이포(제포)가 개항했는데, 이곳이 부산신항 일원이란 점도 특별하다.

부산·내이포 개항은 해안 지대에 기승을 부린 왜구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왜인들과 합법적으로 교역하며 통제하는 데 목적을 뒀다. 개항지에 설치된 왜관이 그런 장소다. 왜관에서 취급된 주요 대일 수출품은 인삼과 한약재, 쌀, 도자기, 소가죽, 소뿔, 비단, 금, 마른 해삼 등이 있다.

당시 부산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작품이 일본으로 활발하게 수출된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부산박물관이 지난달 14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마련한 ‘조선시대 부산의 화가들’, 내년 2월 12일까지 열고 있는 ‘개항장의 수출 화가, 기산 김준근’ 두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박, 변지순, 이시눌, 변지한 같은 지역 유명 화가는 물론 해옹, 옥천 등 자(字)나 호(號)만 있는 무명작가의 그림도 일본에 많이 팔렸다고 한다. 일본인이 문화 선진국으로 여긴 조선의 필묵 작품을 선호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왜관 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부산포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이동할 때 현지 지식인들이 몰려들어 앞다퉈 서화를 얻으려 했다는 역사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풍속화가로 이름난 김준근은 부산포를 통해 세계로 그림이 팔려 나간 경우다. 그가 그린 다양한 모습의 풍속화와 산수화는 19세기 우리나라에 온 외교관, 군인, 선교사 등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판매됐다. 미국, 유럽의 박물관과 외국인들이 소장한 그의 작품만 1500여 점에 달한다. 조선의 변방이던 부산이 경제·문화적으론 오래전부터 K콘텐츠를 해외로 전파한 국제도시였던 게다. 2030월드엑스포를 유치할 만한 자격을 일찌감치 갖췄던 셈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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