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문학 위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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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 경성대 철학과 교수

제16회 세계해양포럼 마지막 날인 10월 27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해양인문학’ 세션에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WOF사무국 제공 제16회 세계해양포럼 마지막 날인 10월 27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해양인문학’ 세션에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WOF사무국 제공

“나는 청춘의 열정으로 여러 학문 분야에 몸을 던졌으나 재능이 제한되어 많은 분야에서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는 점을 대학 일 학년에 깨달았다. 나는 메피스토의 경고에서 진리를 배웠다. ‘학문의 주변을 맴도는 짓은 헛된 일, 누구든 배울 수 있는 것만 배울 수 있다.’”

프로이트(1856~1939)는 자서전(Selbstderstellung)에서 신입생 시절의 통찰을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인간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재능의 한계 때문에 여러 학문에서 성과를 거둘 수는 없는 것이다. 여러 분야를 공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학식은 얕게 마련이다. 넓지만 얕은 지식은 쓸모가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교양인보다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서 자신이 할 일이 생긴다.

대학 ‘인문학의 위기’ 사회에 호소

정작 인문학 개념은 정립 못 해

좋은 삶 즉 호생의 탐구가 인문학

인생의 행복을 찾는 다수 학문 해당

인문학 수요, 계속 늘 수밖에 없어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우리는 인문학 교수들에게 자주 듣는다. 그들은 교양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Humanities)은 한국 대학에서는 교양 학문으로 간주되어, 예전에는 문학,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은 학과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수강해야 했다. 2000년대부터 학생들이 이런 교양을 듣기 싫어하면서 인문학은 강좌 수가 대폭 줄고, 인문학 관련 학과에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아서 폐과되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인문학 교수들은 인문학의 위기라고 간주하고, 그 위기를 사회에 호소했다. 그들은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대학 당국과 정부에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정말 교양 과목을 듣지 않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를 몰라도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것도 아니고, 진정성 없이 대충대충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교양 교육이 제공하는 교양이 없어도 인생을 잘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인문학 교수들이 자주 ‘인문학 위기’를 논의했지만, 인문학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했다. 인문학이 무엇이냐 물으면, 그들은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을 열거한다. 이것은 인문학의 사례를 든 것이지 인문학의 본질을 말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하는데, 이건 범위가 너무 넓다. 의학, 생물학, 화학, 법학, 신문학도 인간을 탐구한다. 인문학의 위기와 대책을 논의하기 전에 인문학의 본질이 먼저 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의 본질을 오해하게 되고, 효과적인 대책도 세우지 못하게 된다.

인문학은 좋은 삶 즉 호생(好生)의 탐구이다. 행복한 인생의 요소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현재의 사회 제도와 문화가 호생의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지성적 활동이 인문학인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이 인문학인 이유는 그것들이 인문대학에 소속되어서가 아니라, 호생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만이 아니다. 오페라, 발레, 뮤지컬, 영화뿐 아니라 종교, 정신의학,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도 인생의 행복을 탐구한다. 예전에는 철학이 곧 인문학이었지만, 이제는 다수의 학문이 호생의 탐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면 인문학 위기 사태가 전혀 달리 보인다. 인문학 관련 학과가 모두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 영화, 심리학, 정신의학은 인기가 점점 증가하고, 경제학, 정치학이나 종교 관련 학과는 예전 같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 폐과되어 대학에서 사라지는 학과는 철학과와 역사과 그리고 일부 외국 문학 학과들이다. 이런 학문은 공부하기 너무 어렵거나 졸업해도 취직하기 힘들어서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은 것이지 인문학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인문학을 경시하지 않는다. 경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호생의 욕망은 더 커지므로 인문학의 수요는 계속 늘 것이다. 다만 철학처럼 공부하기 어렵거나, 독문학처럼 졸업생을 기업이 뽑으려고 하지 않는 학과를 지원하는 학생 숫자는 줄어들 수 있다. 그래도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한, 인문학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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