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인들의 대서양-인도양 횡단 ‘대항해시대’를 열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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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로저 크롤리

‘인류사 바꾼 대전환’ 재미있게 풀어내
사진 찍듯이 묘사, 소설 같은 몰입감 줘

인류는 다른 세상의 존재를 쉽게 인식하지 못했다. 대항해시대. 큰 배를 타고 먼 바다를 넘어 완전히 다른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려던 그런 각축전이 있기 전에는. 가끔 생각한다. 대항해 시대가 있었던 것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작은 세계들이 외부 존재를 모른채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일이었을까 하는 것을.


15세기 이전까지 유럽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변방에서 십자군 운동을 벌였다. 동방으로 진출하고자 했으나 좌절되고, 오히려 몽골제국과 오스만 등 이슬람 제국에 밀려 지중해에 갇힌 형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바다로 과감히 눈길을 돌려 새로이 세계를 연결하고 제국주의적 확장을 이루어냈다.

대항해시대의 시초를 보통 콜럼버스의 ‘신대륙’(아메리카) 상륙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한층 실질적인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포르투갈인들의 대서양-인도양 횡단이었다. 당시 아프리카 대륙을 기준으로 이슬람 세력이 동쪽 해안(인도양)을, 유럽 세력이 서쪽 해안(대서양)을 개척했다. 하지만 위험성이 커서 양측 모두 더 남쪽으로 내려가려는 엄두를 내진 못했다. 그런데 포르투갈인들이 과감하게 그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포르투갈은 유럽 변두리의 작은 나라였다. 그런데 어떻게 광대한 해양 제국을 건설하며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혔을까.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은 이런 궁금증에 답한다.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서쪽 연안 가까이에서 항해하던 기존의 방식을 뒤집는 천재적인 영감을 발휘해 대서양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인류사를 바꾸는 대전환이었다. 현재의 세계화는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포르투갈 제국의 해외 원정기에 대해 흥미진진한 시각을 제공한다. 유럽 안에서도 가장 서쪽 끝 바깥쪽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육로는 물론이고 지중해 해로를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여기에 십자군 정신이 더해졌다. 지중해 동쪽을 차지한 강대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성지를 수복하려면 인도 쪽에 있다고 여겨지던 전설적인 기독교 왕 ‘요한’을 만나야 했다. 거기서 서쪽으로 진군하고, 유럽에서도 협공하여 양쪽에서 이슬람을 공격해야 한다는 믿음이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은 이런 상식을 깨고 대항해를 추진해 성공한 것이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은 사상 최초로 희망봉을 넘어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항해한 모험가 바스쿠 다 가마, 포르투갈 왕의 충직한 대리인으로서 인도 서부를 공략한 첫 총독 프란시스쿠 드 알메이다, 광기 어린 집념으로 인도양 일대와 그 너머까지 두려움에 떨게 한 후임 총독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이다. 소설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각 인물과 그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상세히 묘사하기 위해 감정을 일절 배제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사진 찍듯이 묘사하는 ‘카메라 아이(camera eye)’라는 기법을 사용한 서술 방식이 흥미롭다. 로저 크롤리 지음/이종인 옮김/책과함께/568쪽/3만 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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