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축음기를 왜 ‘십년감수’라고 했을까
근대 사물 탐구 사전/문지원 정명섭
〈근대 사물 탐구 사전〉은 개항 이후 도입된 근대 사물 100년의 역사를 살피는 책이다. 전차 무성영화 성냥 재봉틀 인력거 석유풍로(곤로) 축음기 고무신 8가지를 집중 조명한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전차의 경우, 신기한 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양반이 자신이 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버렸다고 노발대발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종은 축음기에서 흘러나는 박춘재 명창의 목소리를 듣고 “기계에 기운을 빼앗겼으니 춘재의 수명이 10년은 감해졌겠구나”라고 했단다. 그래서 목숨 수(壽) 자를 넣어 ‘십년감수(十年減壽)’라는 사자성어로 축음기를 한창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고무신도 순종이 신던 신발이라는 신문광고로 처음에 ‘스타 마케팅’ 전략을 펼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풍로는 숯, 석유, 전기를 연료로 변주할 수 있는 ‘부엌의 혁신’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인력거는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 돈만 내면 골목길도 들어갈 수 있는 신 교통수단이었다.
근대 사물들은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웠다. 전차는 길을 낸다고 경복궁 서십자각과 담장을 허물어버리는 구실이 됐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전차 요금 차등제가 실시되고, 조선인이 사는 곳에는 전차 노선이 적게 설치돼 식민지 백성들에게 차별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재봉틀은 경제적 자립과 가족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새 기회를 주기도 했으나 식민지 전쟁기에 일제의 군복을 만드는 기계의 대명사가 됐다. 해방 이후에는 재봉공장 여성 노동자에게 헤어나기 힘든 개미지옥 같은 것이 재봉틀이었다. ‘미싱 시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미싱 공장과 함께 성냥 공장, 고무신 공장은 장시간 노동과 적은 임금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스마트폰, 자동차 같은 문물의 명암까지 통찰하자는 것이 책의 의도란다. 정명섭 지음/초록비책공방/292쪽/1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