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준비 없이 전면 개방한 건, 가치 훼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12/유홍준
“개방 청사진 없이 한 것은 잘못” 지적
무연고 혼백과 뒤섞인 ‘유관순 유해’
여러 사연 깃든 ‘인사동 이야기’ 눈길
5년 만에 선보인 ‘서울 편의 완결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12권은 5년 만에 나온 서울편 3~4권으로 그 완결판이다. 이전 답사기와는 뭐가 좀 다르다. 과거를 드러내는 고고학(考古學)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의 기억을 드러내는 고현학(考現學)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고향 서울 이야기’라고 이름 붙였다. 유홍준의 고향이 서울 사대문 안 서촌이라고 한다. 서촌은 경복궁과 청와대 서쪽 마을이다.
3권은 서울 사대문 안동네 이야기다. 북악산 서촌 인왕산 북촌 인사동 북한산 이야기가 나온다. 고현학이라고 했으나 그의 입담이 구수하다. 이른바 ‘유홍준 구라’라고 하는 관록의 그 입담이다. 그 관록에서 문화유산과 당대 문화에 대한 유장한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3권에서 인사동 이야기가 구수하고 분량이 많다. 전체 8개 장 중 3개 장을 할애했다. 인사동 변천사는 근현대 우리 문화예술 형성사에 맞먹는다. 인사동은 일제강점기에 생겼다고 한다. 이곳에 오만 사연이 다 깃들어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 인사동의 가장 큰 명소는 요릿집 태화관이었는데 이곳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기념비적인 장소가 됐다. 백두용과 전형필의 한남서림은 인사동 고서점 중 독보적 위치에 있다. 1910년께 백두용이 처음 문을 열었던 것을 1936년 전형필이 이곳을 인수해 문화재 수집의 아지트로 삼은 곳이다. 국보 중의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입수한 것도 한남서림을 통해서였다. 국학 관계 학자들, 서지학자 애서가 장서가, 근현대사 전공 역사학자와 국문학자, 크게 세 부류가 인사동 고서점을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고미술상 얘기도 빠질 수 없다.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은 아예 ‘아자방’이란 점포를 운영했다. 1979년 금당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도 인사동이었다. 역사, 삶, 문화예술이 집적된 서울 보물 동네가 인사동이라고 한다. 서촌과 북촌은 경복궁을 중심에 놓고 붙여진 동네 이름이다. 북촌은 우리 근대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장소이며, 서촌은 수백년간 문인 예술가 정치인의 터전이었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곳이자, 노론의 조상 청음 김상헌이 ‘장동 김씨’를 형성하며 많은 시문을 남긴 곳이 서촌이다.
도성의 산 중에서 북악산은 경복궁과 청와대 뒤편에 있고, 인왕산은 서촌 쪽 서쪽에 있다. 북한산은 북악산 뒤편에 우람한 산줄기를 펼치고 있다. 북악산은 최근에서야 개방된 곳이다. 도성 방어의 핵심지였고, 조선총독 관저와 청와대가 있어 통제된 이곳에는 생각 밖으로 많은 유산이 있다. 최근 청와대를 준비 없이 전면 개방한 것은 그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개방 형태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없이 무턱대고 하는 개방은 문화유산을 제대로 향유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산과 관련해서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얘기를 하고 있다.
4권은 ‘강북과 강남: 한양 도성 밖 역사의 체취’ 편이다. 3권의 인사동 얘기처럼 4권에는 성북동 얘기가 3개 장을 차지한다. 성북동은 우리 근현대 문화사의 핵심적인 현장이라는 것이다. 이태준 김용준 김환기 한용운 조지훈 백석 윤이상 김광섭 전형필 등 우리 문화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긴 이들이 성북동과 관련돼 있단다. 음악가 윤이상은 1953년 피아노를 팔아 성북동에 집을 마련했는데 개울 건너 시인 조지훈이 살고 있어 아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고려대 교가를 두 사람의 작사, 작곡으로 지었다. 윤이상 집 맞은편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의 옛집이 있다. 이 집은 수연산방과 함께 성북동 한옥의 쌍벽을 이룬다고 한다. 최순우 옛집은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는 한국 미술의 마음씨가 느껴지는 집이라고 한다.
강남으로 가서는 선릉과 정릉, 봉은사, 가양동의 겸재정선박물관과 허준박물관을 둘러본다. 그리고 다시 망우리 별곡이란 이름으로 강북의 망우리 공동묘지를 찾는다. 이곳 왼쪽 초입에 동떨어져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태원에 있었던 공동묘지의 무연고 혼백 2만 8000기를 화장해 한 데 모신 거라고 한다. 여기에 유관순 열사의 유해도 섞여 있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서울을 움직이고 만든 힘은 서울을 살아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유홍준의 서울 답사처럼 부산에 대한 구수한 문화답사의 이정표적인 표현과 작품이 필요하다는 독후감이 진하게 남는다. 유홍준 지음/창비/352쪽, 368쪽/각 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