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참사와 책임자
애도의 시간이 지나고 책임 추궁의 시간이 왔다. 156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의 국가 공식 애도 기간이 5일로 끝나면서 책임 공방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경찰, 소방, 지자체, 정부의 총체적 대응 부실이 드러나 책임자 문책과 처벌이 불가피한데 그 범위와 시기가 문제다.
역대 참사에서도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 문제는 늘 논란거리였다. 육해공을 아우르며 참사가 끊이지 않아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문민정부 시절. 1993년 10월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8일째 되던 날 이계익 교통부 장관과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을 경질했다. 이듬해 성수대교 붕괴 참사 때는 이원종 서울시장을 사고 당일 바로 바꿨다. 같은 날 이영덕 국무총리가 사표를 제출했지만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라며 반려했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민선 1기가 막 출범했을 때였는데 사고 발생 이틀 만에 자리에 오른 조순 서울시장이 건설 담당 이동 제2부시장 문책 인사를 단행했다. 참사가 잇따르다 보니 김 대통령이 ‘부실기업 인수’ ‘5000년 쌓인 부정의 결과’ 등 이전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했다 ‘경복궁이 무너지면 흥선대원군 책임이냐’는 일갈을 듣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6월 씨랜드에서 불이 나 유치원생과 교사 23명이 목숨을 잃자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김종필 국무총리 등 내각에까지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해 10월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로 56명이 숨지자 김광식 경찰청장을 즉각 경질하며 책임을 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192명이 숨지자 현장을 찾아 ‘하늘을 우러러 국민에게 죄인된 심정’이라고 사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에 이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자 3일 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문책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한 달이 지나서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했다. 김 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는 말로 여론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는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에 대한 경질에서부터 내각과 청와대 전면 개편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민심의 풍향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주시하고 있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