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경찰만 때리는 여권… 행안장관 등 고위직 문책은 선 긋기
김대기 “내각 중 사의 표명 없다”
여권이 ‘이태원 참사’ 책임과 관련, 경찰에 연일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러면서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 격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고위 정무직 인사들에 대한 문책 가능성에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번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질문에 “현 시점에서 보면 집회가 일어나는 용산 쪽에 치안을 담당하는 분들이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국가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에 대한 국가적 대응 시스템의 부재를 꼬집는 질문에 용산 현장을 담당한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로 한정하는 답변이었다.
국민의힘은 전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도 “업무상 과실치사, 참사 방조, 구경꾼, 살인방조에 세월호 선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장제원 의원), “112 상황실을 1시간 24분이나 비웠다”(정우택 의원) 등 대기발령 상태인 용산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등에 대한 강제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야권의 경질 요구가 집중된 이 장관 등 책임선상의 가장 위에 있는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문책 가능성은 적극 부인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국감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내각 구성원이나 대통령실 참모진은 없다고 밝히면서 “그 분들이 물러나는 게 당장 급한 게 아니다. 지금 장관과 경찰청장을 바꾼다면 행정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장관 스스로도 이날 야당의 거취 표명 요구에 “현재 위치에서 제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거부했다.
참사 초반과 달리 여권이 책임론과 관련해 강경 모드로 돌아선 것은 윤 대통령의 의중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잇단 실언으로 여권 내부에서도 이 장관 사퇴 불가피론이 거론됐던 이달 초 합동분향소 조문에 이 장관만 대동하고 나서면서 신임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전날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는 “왜 4시간 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며 경찰을 강하게 질타하면서도 야당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 요구에는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유례 없는 대규모 참사에 대해 하위직 경찰만 문책하고, 총괄적 관리 임무가 있는 고위 정무직 공직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고조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주무 부처 장관을 놔둔 채 한 놈만 팬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맞느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장관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또 결과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라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