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잘못된 정책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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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동화 같은 얘기’는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이라는 밝고 희망적인 의미가 있는 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다소 황당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국가적 정책에 이것을 적용해 보면 비전은 동화같이 순수하고 희망적이어야 하지만, 그 비전을 달성하는 정책 수단들은 동화처럼 순진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물러나고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퇴진은, 경쟁자였던 리시 수낵 총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동화 같은 정책’ 때문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감세와 차입 확대 정책을 밀어 가겠다고 공언한 트러스의 정책은 유감스럽게도 시장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트러스 총리·김진태 지사 오판 시장 혼란

시장 불안에도 정부 비상한 대책은 없어

회복탄력성 위해 정부 정책 신뢰성 필수

시장은 대체로 보수적이며 감세를 언제나 환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하고 이자율을 올려야 할 시기에 감세와 차입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자 투자자들은 투자를 망설였고, 재정 적자 우려에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개입하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지만 오판으로 인한 혼란과 손실은 엄청났다.

물론 정부의 정책이 항상 성공하고 국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에는 찬반이 따르게 마련이고, 일부의 정책들은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의 정책이 수습하기 어려운 위험과 혼란을 불러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파괴적인 것은 바로 시장으로부터의 불신이다.

시장은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 있는 공간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약속과 관계 그리고 돈이 관련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시장에서 신뢰가 흔들렸을 때 반발은 극심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정권을 흔들 수도 있다. 세계가 모두 우려하였던 트러스 총리의 감세 정책에 실망한 시장의 반응은 나비효과를 통하여 영국 경제 전체를 대혼란으로 몰아갔고, 결국 그녀는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보았던 ‘동화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얼마 전 발생하였다. 강원도가 테마파크인 레고랜드 사업에 투입되었던 자금에 대해 보증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시장이 보인 발작 같은 반응이 그것이다. 도 산하 공사가 발행한 채권이었지만 사실상 강원도가 보증하였던 채권 상환을 거부한 충격은 컸다. 그러잖아도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보증을 한 채권까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은 채권시장은 물론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결국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재차 유감의 뜻을 밝히며 보증채무를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유발된 나비효과를 막기 위해 정부는 거액의 금융시장 지원책을 내놓아야 했다. 충격으로부터의 회복탄력성이 크게 떨어진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에서 정책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주었다.

중앙정부의 최근 행보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동안의 지속적인 금리 상승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되어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과 무역수지 적자 누적으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가시지 않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시장에 잠재해 있는 불안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있었던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가 바로 그렇다. 그야말로 비상한 수단을 써서라도 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상황인데도, 시장이 기대하는 ‘비상한’ 정책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날 오고 간 정책 가운데에는 오래전에 나왔던 동화 같은 비전들이 그 자리에서 재탕된 것도 여럿 있었다. 비전이 아닌 구체적인 민생 비상 대책들이 나왔어야 하는 자리임에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오래된 얘기들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금리 상승에 따른 자금경색을 풀어 주고,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고, 수출 회복으로 국제수지를 호전시킬 정책 수단을 기대했던 시장으로서는 실망감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에 가해지는 정책의 무게는 앞으로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둔화되면 환율을 비롯하여 관리해야 할 경제지표들이 더 늘어나고 다루기 더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시장의 탄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을 경우 사소한 사건에도 시장은 발작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에서 값비싼 경험을 했듯이 어려운 상황에서 잘못된 정책은 매우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잘못된 정책의 나비효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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