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i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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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1967~ )

밥만 먹어도 내가 참 모질다고 느껴진다 너는 어떠니.

(중략)

너는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었다. 나도 그때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딘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디로든 가야만 한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들었다. 지난겨울 내가 내다버린 나무에서 연둣빛 잎이 나고 연분홍 꽃이 피고 있는데 마음에 들 수밖에. 지난겨울 내가 만난 젊은이가, 아니 돌멩이가, 지금 나랑 같이 살고 있다. 나도 그 옆에서 돌멩이가 되었다. 우는 돌멩이 옆에 웃는 돌멩이 이거나 외치는 돌멩이 옆에 미친 돌멩이 같은. 그는 어떨 땐 울면서 외치면서 노래를 한다! 나는 눈을 감고 허밍을 넣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 시집 〈i에게〉(2018) 중에서


도처에 울음과 어이없는 죽음이 생긴다. 사회가 오징어 게임 세트장 같다.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는 허술하고 그 사회 속의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시인은 ‘밥만 먹어도 내가 모질게 느껴진다’라고 고백한다. 결국 곁의 사람은 돌멩이가 되었다. 커다란 슬픔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에 빠진다. 돌멩이가 된 곁의 사람은 ‘그는 어떨 땐 울면서 외치면서 노래를 한다!’ 곁의 사람이 울 땐 그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밖엔 없는 줄 알았다. 시인은 여기에서 펄쩍 뛰어 오른다. 시인은 ‘나는 눈을 감고 허밍을 넣지’라는 놀라운 시적 세계를 들려준다. 그 뜀은 도약이고 시어가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미학이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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