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박병선의 꿈, 의궤
1972년 한 한국인 유학생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구석진 서고에서 19세기 조선에서 건너온 고서적을 발견한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 책을 살피던 유학생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고 명시돼 있는 것이다. 1377년이라니!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기독교 성경을 찍은 게 1450년 무렵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금속활자를 사용한 게 그보다 70여 년 전이란 이야기가 된다. 세계 최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가 세상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기념비적 발견의 주인공이 바로 2011년 작고한 박병선 박사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 수녀를 꿈꿨으나 포기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역사와 종교를 공부하러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이후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그는 평생을 프랑스가 약탈한 우리 문화재를 찾아 내고 돌려받는 데 헌신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한마음으로 바랐던 건 ‘외규장각 의궤’의 온전한 반환이었다.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 행사의 전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엮은 것으로, ‘조선 기록 문화의 꽃’이라 불린다. 의궤는 강화도 외규장각에서도 보관하고 있었는데, 1866년 프랑스군이 약탈해 가져 갔다.
박 박사는 외규장각 의궤를 찾는 일에 가진 힘을 다 쏟았다. 기실 〈직지〉의 발견도 의궤를 찾다가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1975년 마침내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의궤를 찾아 냈다. 10여 년 연구 끝에 그 결과를 〈조선조의 의궤〉라는 책으로 알린 박 박사는 이후 의궤 반환 운동을 펼쳤고, 그 덕에 한국 정부는 2011년 대여 형식으로나마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박 박사는 대여 형식은 옳지 않다며 온전한 반환을 촉구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일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여하튼, 국립중앙박물관이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라는 이름의 특별전을 지난 1일부터 열고 있다. 특별히 박 박사의 공로와 생애를 기려 그의 11주기를 즈음한 21~27일엔 무료 관람으로 진행한다. 의궤와 함께 박 박사의 흔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전시라고 하는데, 서울에서만 볼 수 있어 아쉽다. 이 또한 지방이 겪는 차별이라 생각하니 서럽기까지 하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