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가난, 그게 뭐라고?!
영화평론가
바닥에 불판을 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부부. 아내 ‘정희’가 주인집이 전세를 올릴지를 남편 ‘영태’에게 묻자 영태는 쌈을 싸먹으며 “모르지”라고 무심한 듯 말한다.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언제고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아는 듯 소주잔을 기울인다. 실직 상태인 부부에게 전세금이 오른다는 건 집을 떠나야 함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보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가난을 이야기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가난을 사유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생활비를 걱정하는 정희가 “보일러를 아껴 쓸 걸 그랬나?”라고 말하자, 영태는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들의 삶이 가난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실직에도 돈에 연연치 않는 부부
고군분투 속에도 품위 잃지 않아
비관 대신 스며든 유머에 웃음도
영태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면접도 보러 가고, 같이 일을 하자는 고교 동창의 제안도 받지만 직장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희 또한 강사 지원을 해보지만 답이 오지 않는다. 생활비는 필요한데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자 부부는 대리 기사와 배달 등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진상 손님과의 마찰로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부부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불안감을 느낀 정희는 사채를 빌려 쓰기로 한다.
사실 열심히 알바를 뛰어도 나빠져만 가는 상황에 지칠 법도 한데 부부는 서로에게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서로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영태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정희는 남편을 다그치기보다 그 회사가 이상한 곳이라며 남편을 위로한다. 그러고 보면 부부는 이상하다. 하루하루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언제나 함께 소주 한 잔이나 밥을 나눠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영화는 대략 이런 식이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절박해 보이지 않고,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니 알바를 하지만 품위만은 잃지 않는다. 이 점은 부부가 가진 것 중 가장 값나가는 카메라를 선배에게 빌려주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태는 카메라를 빌려간 선배에게 연락이 없자 직접 선배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믿었던 선배가 카메라를 팔아버렸다고 하자, 영태는 홧김에 카메라 값 300만 원을 억지로 받아낸다. 집으로 돌아온 영태는 돈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영태는 자신이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선배에게 100만 원을 돌려준다는 문자를 보낸다. 누구보다 돈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인간의 존엄과 신뢰와 도리를 먼저 생각한다는 건, 돈이 우선인 이 사회에서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부부에게 있어 가난은 조금 불편하고,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나 자신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흉도 아니다. 그저 오늘이 가난한 것뿐이다. 내일을 위해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가난을 말하는 여느 영화들과는 다른 리듬으로 진행되고, 우리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비관과 자조가 사라진 자리에는 잔잔한 유머가 스며들어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당연한 일상을 잊고, 낮에는 시원하고 밤에는 따듯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삶을 누리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누군가를 상처 낼지도 모를 일이다. 돈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그 삶을 지속하기 위해 나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부부를 통해 생각해본다. 또한 실제 부부인 박송열, 원향라가 영화에서도 부부 역을 맡고 있으며, 감독과 제작까지 더하고 있기에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