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장의 거울, 동시에 나를 비춰”
‘1972-2022 내가 나를 그리다’
정철교 작가 작업실 20일까지 전시
“자화상 계기 내가 사는 곳 그려”
원전 품은 서생의 마을 풍경 작업
“자화상으로 나의 내면 끄집어 내”
작가로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시기, 다시 뭔가를 시작하기 위한 시도.
정철교 작가는 자화상을 그렸다. 왜 자화상일까? 정 작가가 처음 자화상을 그린 것은 고등학생 때다. “고흐, 렘브란트, 피카소 같은 유명 화가들이 다 자화상을 그리니 나도 한번 그려보자 싶었죠. 20대, 30대, 40대… 시간이 지나서 보니 각 자화상에 내가 그때 가진 감정이나 배경이 다 들어있더라고요.”
짬짬이 그리던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린 것은 2005년경의 일이다. “작가로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어느 순간 무슨 작업을 할지 막막해지더군요.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대상은 ‘나’로부터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는 2년 정도 자화상만 그렸다. “200점 가까이 나만 그렸더니 ‘나에게서 벗어나는 변화의 지점’이 생기더군요.”
작가의 눈에 자신이 사는 동네가 들어왔다.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고, 내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곳을 그려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 자화상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동력이 된 것이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다시 그림을 시작하고 찾는 과정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노란색 하늘, 무수히 많은 전깃줄, 배경이 되어버린 원전 돔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정 작가는 서생 신고리원전 주변의 골매마을, 신리마을, 신암마을 풍경을 그림에 담아냈다. 새로운 그림과 함께 자화상 작업도 계속했다. “2017년과 18년에는 나 자신을 매일 한 장씩 400여 점을 그려서 예술지구P에서도 전시했죠.” 2021년 말 정 작가는 코로나 시대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2021년 그림일기’전을 열기도 했다.
정철교의 ‘1972-2022 내가 나를 그리다’ 전시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덕골재길 31-6 ‘정철교 작업실’에서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정 작가가 그린 자화상은 700여 점. 2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200여 점의 자화상을 선보인다. 작가는 마치 수백 장의 거울이 자신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고3 시절의 거울, 20대부터 60대까지의 거울이 동시에 저를 비추고 있어요. 그 거울이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초기 자화상은 무턱대고 사실적으로, 성실하게 묘사한 작품이 많다. “처음에는 그림을 배우는 기분으로 나를 닮게 그렸죠.” 시간이 지날수록 자화상은 정 작가의 내면을 향했다. “처음에 껍데기를 그렸다면 지금은 나의 내면, 내 속에 내재된 것을 끄집어내는 자화상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겹겹이 다른 자신의 모습에서 작가는 ‘내 속에 정말 많은 내가 있었구나’를 발견한다고 했다.
정 작가에게 꾸준히 다작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남들에게 그림도 가르치고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림을 많이 안 그렸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더라고요. ‘작가로서 제대로 살아보자’ 생각하고 2000년 중반부터 하루 13시간씩 그렸어요. 그게 버릇이 됐죠. 지금의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