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인정…"인권위 결정 타당"
배우자 ‘인권위 권고 취소’ 패소
“피해자 진술 신빙성 있다” 판단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어 법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부하직원을 성희롱했다고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15일 박 전 시장의 배우자인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권고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편함을 줬다고 보여 피해자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인권위가 피해자 구제와 제도개선을 위해 내린 권고 결정에 재량권의 남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그가 부하직원인 서울시 공무원으로부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성추행 의혹을 풀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수사를 종결했다.
이후 지난해 1월 인권위는 직권조사 결과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동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로 봤다. 그에 따라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에 개선책 마련을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강 씨는 인권위가 피해자 주장만 듣고 고인을 범죄자로 낙인찍었다며 지난해 4월 인권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강 씨의 대리인이었던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달 박 전 시장과 피해자 간 텔레그램 대화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가 ‘2차 가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사안을 심리한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비서직을 수행하며 직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박 전 시장에게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박 전 시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모면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여러 번 이뤄져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강 씨 측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과 ‘셀카’를 찍는 등 친밀감을 표현했고 수년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시장 비서직이라는 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고 경력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수치심으로 인해 피해를 부정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등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 역시 “이성 간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기보다 부서 동료, 상하 직원 사이 존경의 표시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강 씨 대리인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매우 당황스럽다”며“유족과 상의해 재판부 판단의 어떤 점이 부당한지 밝혀볼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