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언로 제한, 삼류국가로 가는 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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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언론자유 강조해 온 윤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사뭇 달라진 태도
급기야 전용기 MBC 탑승 배제 조치
우호적 언론만 감싸는 것 아닌지
조선은 군주제 국가지만 간언 중시
역사 되돌리는 언론 통제 시도 유감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 인근 만국기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 인근 만국기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관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취임식에서, 8·15 경축사에서, 그리고 유엔 연설에서도 수도 없이 외친 단어다. 그중 언론자유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하고 다짐한 영역이다. 윤 대통령은 줄곧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선 이후에도 초유의 출근길 문답을 통해 언론과의 소통 의지를 다졌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의 언급도 기억할 만하다.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습니다”.

이랬던 대통령의 태도가 취임 6개월 만에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언행들이 속속 나와서다. 물론 그런 조짐이 없진 않았다. 이를테면, 지난 3월 언론노조를 두고 “허위 보도를 일삼고” “갖은 못된 짓 다한다”며 강하게 질타한 사례가 있다. 지난달에는 만화공모전 수상작인 고등학생의 풍자 카툰을 문제 삼아 문체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청소년의 자유로운 예술 창작까지 간섭할 일인지 비판이 쏟아진 게 그때다.

시간이 흐를수록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결국 이번 동남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불편한 속내가 확연히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출발 직전 갑자기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막더니 그 이유로 ‘왜곡·편파 보도’를 들었다. “비속어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김건희 여사의 대역을 고지하지 않은 방송” 등이 그 사례로 지목됐다.

과연 그럴 일인가. 비속어 논란은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면이 있는 데다 다른 언론사도 함께 보도했다는 점에서 명분이 군색하다. 외교 문제와 무관한 논문 표절 의혹 제기를 ‘중요한 국익’과 연결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한 것이지 MBC의 취재를 제한한 적 없다”는 대통령실 주장 역시 억지에 가깝다. 순방 기간 전용기는 기자간담회 등이 열리는 공적인 취재 공간이다. 탑승 배제는 취재 제한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특정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빌미로 삼은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실은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한·일 정상회담 현장도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전속 취재’로 내용을 편집해 추후에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대통령실은 “양국 협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 속에 한반도 정세와 역내 안보 등 주요 현안이 논의되는 중대한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이 친분 있는 특정 기자들만 전용기 안의 전용 공간에 따로 불러 접촉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대통령직과 공적 권력의 사유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언론자유가 구미에 맞는 자유, 우호적인 언론을 가리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부른다. 밉든 곱든, 공무에 개인적 감정과 사적 관계를 개입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은 군주제 국가지만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이라는 언론 삼사를 두었다. 이중 핵심은 국왕에 대한 간언, 관리에 대한 탄핵,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충고 등을 맡은 사간원이다. 왕조 초기 임금과 사간원은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점차 사간원의 역할이 정착되면서 임금도 사심 없는 비판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역사 속에서 유독 돌출된 군주가 있었으니 바로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간언 자체를 유난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거슬리는 간관들을 옥에 가두고 유배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마침내 사간원과 홍문관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왕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자마자 사간원과 홍문관은 다시 설치됐으니, 이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간하는 것을 들어 흥하지 않은 적이 없고, 간하는 것을 듣지 않고 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예로부터 사간원 간관들이 해 온 말이다. 임금은 진실한 마음으로 간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간관들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하는 것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언을 거부하는 임금은 어두운 임금’이라 했다. 언관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백성들의 숨은 고통을 알리되, 지극히 공정한 마음(至公之心)으로 해야 한다.”(정약용)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언론 현실이 왕조 시대보다 낫다 할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언론 통제는 정치권력의 몰락을 앞당길 뿐이라는 사실. 더 두려운 건 그것이 나라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데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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