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공항 난민
라이프부장
18년 전 개봉했던 영화 ‘터미널’은 주인공이 비행기를 탄 새 고국의 쿠데타로 무국적자가 되고, 9개월간 미국 뉴욕 공항에 발이 묶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공항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 자신의 의지로 긴 시간 공항 노숙을 버틴 후 마침내 “집에 간다”라고 인사하며 영화가 끝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실존 인물, 이란 출신의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의 결말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그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18년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노숙했고, 영화 판권으로 3억 원 이상을 받으며 공항을 떠났지만, 결국 공항으로 돌아와 지난 12일(현지 시간) 숨졌다.
오래전 개봉했던 그 영화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오갈 데 없는 주인공의 신세가 너무나 절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공항에 묶인 난민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한국만 해도 2019년 10월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6명이 인천공항에 287일 체류한 끝에 간신히 임시체류 허가를 받았고, 1년 2개월간 인천공항 환승구역에서 지낸 아프리카 청년의 사례도 있다.
한국은 난민에게 인색한 나라에 속한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2010년부터 11년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 정도로 난민협약국 중 최하위권이다. 세계 평균치인 30%에 한참 떨어진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위상을 고려하면 야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돌아보면 한국은 난민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일본에 나라를 뺏긴 후 독립투사들은 중국 상해에서 정치적 난민으로 머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생긴 수많은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부산에 40만 명 규모의 난민촌을 운영했다.
한국 내에는 여전히 난민수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 하지만 2초에 1명씩 난민이 생기고, 그중 절반은 아이들인 현실에서 한국이 난민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한국이 당장 대규모로 난민 아이들을 품자는 말은 아니다. 전 세계 난민의 80%가 유엔과 구호단체들이 인접국가에서 운영하는 캠프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한국의 여러 구호단체도 이 캠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선 이 단체에 대한 관심과 후원, 응원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