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가 모여 생명이 탄생한 건 우주적 대사건이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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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상상력 공장 / 권재술

우주 속 인간 존재 의미 풀어낸 에세이
태초, 우주, 존재 등 7개 장으로 구성
무의미 속에서 의미 찾는 존재가 인간
“우리는 별에서 왔고, 그 기억 갖고 있어”

인간은 별에서 왔고, 그 별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2500광년 떨어진 ‘남쪽고리 성운’이 주황색과 푸른색으로 빛나며 소멸하는 모습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것이다. 연합뉴스 인간은 별에서 왔고, 그 별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2500광년 떨어진 ‘남쪽고리 성운’이 주황색과 푸른색으로 빛나며 소멸하는 모습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것이다. 연합뉴스

〈우주, 상상력 공장〉은 우주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의미를 풀어낸 철학적 과학 에세이다. 상당히 쉽고도 밀도 있게 써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주, 그리고 생명과 문명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었다. 태초, 존재, 우주, 생명, 정신, 문명, 태종(太終, 태초의 반대 개념) 등 7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고대 그리스 데모크리토스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를 ‘원자’라고 했다. 하지만 무려 92개나 되는 원자를 발견했다. 더 들어가니 ‘전자’ ‘업쿼크’ ‘다운쿼크’ 3종류 입자가 나왔고 또 더 나왔다. 그래서 ‘끈이론’이 탄생했다. 궁극적 입자는 ‘진동하는 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끈’은 ‘어떤 실체’가 아니라 그냥 ‘진동’이라는 현상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를 영원히 찾지 못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알파’라는 개념이 묘하다. 그는 “생명과 정신은 수많은 입자가 모여서 만들어낸 특성임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입자’들이 모일 때 ‘+알파’가 생긴다는 것이다. 우주의 복잡성에서는 ‘1+1=2’가 아니라 ‘1+1=2+알파’라고 한다. 수많은 입자가 모여 복잡성을 이루면서 생기는 ‘+알파’가 우주 생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알파’의 현상이 생명과 정신, 그리고 ‘그 무엇’이다. ‘1’이 ‘말’이라면 ‘+알파’는 ‘말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알파’가 빠진 세상은 무의미한 세상이라고 한다.


‘1’은 텍스트, ‘+알파’는 콘텍스트라고 한다. 콘텍스트는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텍스트’가 아니라 ‘콘텍스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빅뱅은 ‘0’이 ‘1’이 되는 우주적 사건이었다. ‘0’이 ‘1’을 낳고, ‘1’이 ‘+알파’를 낳아 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파’와 ‘콘텍스트’가 궁극의 질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神)’은 콘텍스트라는 것이다.

빅뱅 이후 138억 년의 장구한 시간 동안 그 어느 한 과정만 어긋나도 이 우주에 생명이 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이 우주는 알면 알수록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그 무의미 속에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 존재는 안타까운 존재, 창백한 존재, 불굴의 존재일 수 있다.

빅뱅 이후 처음 별에서 직접 만들어진 원소는 원자번호 26번 철까지라고 한다. 그런데 지구에는 90개가 넘는 원자가 있으니 우리 태양계는 2번의 폭발을 더 거친 ‘3세대 별’이라고 한다. 처음 별이 폭발한 뒤 만들어진 초신성, 그 초신성이 다시 폭발한 뒤 그 잔해가 모여 태양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태양 가까운 곳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딱딱한 지각 행성이고, 먼 곳 목성 토성 천왕성은 기체 행성이다.

참 신기한 것은 지구 초기에 거의 화성 크기의 소행성이 충돌해 그 잔해들이 뭉쳐 달이 됐고,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구에 생명이 생겼다. 이것은 우연이지만 기적이다. 생각이 없는 원자들이 모여 생각이라는 현상, 생명을 탄생시킨 것은 우주적 대사건이다. 우리 유전자는 우리가 미물이었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우리의 기억은 분자 원자 수준에까지 뻗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별에서 왔고, 그 별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38만㎞ 떨어진 달, 1억 5000만㎞ 떨어진 태양, 수백 수천 수억 광년 떨어진 별들이 우리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태초에 무와 하나의 점에서 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은 뇌의 현상이라고 본다. 종교적 영성은 뇌의 측두엽과 관련 있는데 신과 통하는 관문이 그곳이라는 것이다. “측두엽 자극은 정말로 신이 보낸 걸까요. 이곳을 통해 인간은 신에 이르고 신은 이곳을 통해 인간에 이르는 걸까요.” 인간은 3차원까지는 지각할 수 있지만 4차원은 지각하지 못한다. 그는 “인간 두뇌는 극도도 대단한 물건은 아닌 것 같다”며 “인간 두뇌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만능 기계가 아님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생명체의 모든 특성은 자연선택을 통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고,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는 우주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라고 한다. 진화는 수많은 우연의 집합이며, 그 우연이 똑같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빅뱅의 순간, 처음으로 되돌아가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면 인간이 다시 태어날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인간의 존재는 우주적 우연이지만 우주적 대사건이라는 것이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권재술 지음/특별한서재/432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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