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안면경련증 치료의 추억
정의화 봉생병원 의료원장·전 국회의장
며칠 전 봉생기념병원 안면질환팀이 쾌거를 이뤘다. 안면경련증과 삼차신경통, 설인신경통, 이명과 현훈(어지럼증) 등에 적용되는 미세혈관 감압술을 시행한 지 35년 만에 4000례를 달성한 것이다. 전국에서 세 번째다.
안면경련증은 의지와 관계없이 얼굴 한쪽의 눈꺼풀 주변에서 시작한 경련이 입가까지 퍼져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안면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윙크를 한다는 오해로 노이로제를 겪기도 한다. 심하면 대인기피증까지 올 수 있다.
얼굴의 감각을 담당하는 삼차신경을 따라 생기는 삼차신경통은 한쪽 뺨에 칼로 베듯 심한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이들 질환은 안면신경이나 삼차신경 또는 청신경이 뇌간(숨골)에서 나오는 신경의 초입 부분을 뇌혈관, 주로 동맥이 압박함으로써 증상이 발생한다. 심한 이명이나 현훈의 경우 드물게는 원인을 못 찾기도 한다.
근치술은 미세혈관 감압술을 통해 뇌간에서 나오는 뇌신경의 초입부위 혈관을 움직여 감압시켜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부위가 호흡 중추가 있는 곳이라 출혈이나 혈액순환 장애가 생기면 사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만큼 고도의 난이도가 있는 첨단수술이다.
필자는 1979년 5개월간의 샌프란시스코 대학 방문의사 기간에 놀만 채터 교수의 미세혈관 연구실에서 연수를 끝낼 즈음 미세혈관 감압술을 접하고 큰 매력을 느꼈다. 사실 필자는 출생 때부터 왼쪽 아래 입술로 가는 안면신경을 다쳐 입이 비뚤어지는 약간의 장애가 있어 평소에도 안면신경 질환에 관심이 많았다. 그 즈음에 안면경련증과 삼차신경통의 발생기전이 피츠버그대학의 피터 자네타 교수에 의해 밝혀졌고, 신경외과 학회지에서 새로운 치료법인 미세혈관 감압술을 접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필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면서 자네타 교수에게 뉴욕대학병원의 임상 펠로우를 시작하기 전 한 달간 방문의사로 배우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연수 허락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미세혈관 감압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2년 후 귀국하여 봉생기념병원 원장으로 진료와 경영,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미세혈관 감압술을 한 케이스도 접하지 못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사실 당시 국내 신경외과계에서는 이 수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필자에게 행운이 왔다. 일본 토바시에서 개최된 1984년 한일 신경외과학회에서 이 수술의 대가 중 한사람인 타카노리 후쿠시마 선생의 미세혈관 감압술 발표에 대한 질의를 통해 그분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드디어 미세혈관 감압술을 시행할 첫 케이스를 만났다. 1986년 6월 어느 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장차 시아버지가 될 분이 안면경련증을 중풍으로 오인해 결혼을 반대한 것이 원인이었다. 응급처치로 생명을 구한 그녀의 어머니는 필자에게 안면경련증 수술을 해달라고 매달렸다. 그 여성이 봉생기념병원의 미세혈관감압술 첫 수술례였다. 그리고 36년 만에 이상훈 박사팀이 4000례를 달성했다. 그는 3700여례를 수술하며 ‘사망률 제로’라는 경이적인 결과를 달성했다. 미세혈관 감압술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져 왔고 훌륭한 후배들에게 또 이어져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