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미국 중간선거 결과 세줄요약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공화당 ‘레드웨이브’ 점쳤으나
유권자 표본추출 오류로 패착
선거 판도 뒤집은 Z세대 표심
‘정치적 올바름’이 선택 근거
지역별 주민투표 쟁점 돋보여
낙태권·건강보험 등 찬반양론
‘Z세대 유권자는 왜 민주당을 뽑았나/ 웨이브 예측은 왜 틀렸나/ 그래서 미국 민심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지내며 지난 8일 치러진 중간선거 개표를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선거는 공화당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는 ‘레드웨이브’가 점쳐졌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고 보니 예측은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 레드웨이브는 일어나지 않았고 빨간 잔물결이 일렁이다 그친 모양새였다. 그 결과 선거판도를 뒤집은 Z세대 표심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의 10대와 20대가 속한 Z세대는 정치적이고 정의에 민감한 세대다. 양방향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Z세대는 소수가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하달하는 방식의 정치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치는 시민들의 활발한 사회참여와 주체적인 움직임이 모여 ‘보텀업’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민주주의다. 현대 통신기술은 이러한 신념을 실제로 가능케 한다. 개인이 혼자서 내기 어려운 목소리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조직적인 목소리로 변모한다. 이번 선거에서 Z세대는 낙태권과 복지정책, 환경 문제, 이민자 등의 이슈를 두고 그들의 가치관을 지배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에서 민주당에 많은 표를 던졌다.
중간선거 결과의 빗나간 예측은 통계 추정의 실패다. 통계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단계는 표본추출이다. 표본을 왜곡 없이 뽑아야 통계 예측에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유권자 표본이 과대 추출되면서 그들의 입장이 확대 해석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젊은 층 유권자 표본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표본 왜곡 사례는 정치권에서 가장 단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0년 5월 임기를 시작한 제21대 국회의원은 83%가 50대 이상, 81%가 남성, 99%가 4년제 대졸자로 구성되었다. 전 국민을 모집단으로 하여 대의민주주의의 주체로서 표본집단처럼 역할하는 국회의원이 모집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엄청난 왜곡을 보이니 통계 값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추출된 표본과 거리가 먼 주체인 청년, 여성, 블루칼라 노동자, 외국인 등은 정책적으로 소외되기 쉽다. 왜곡된 표본추출로 통계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성 지표를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마지막으로 중간선거에서 진행한 주민투표는 미국 사회의 민심과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선거는 상·하원과 주지사 선출뿐만 아니라 ‘조례 발의’라고 직역할 수 있는 주민투표가 동시에 진행된다. 연방제인 미국은 연방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주민투표를 통해 주별로 각기 다른 법률 적용이 가능하다. 이번 주민투표 중 가장 주목받은 사안은 단연 낙태권 조례였다. 캘리포니아와 켄터키를 비롯해 다섯 주가 주민투표를 진행했고 결과는 예상할 수 있듯이 민주당이 대세인 주(파랑주)와 공화당이 대세인 주(빨강주)로 나뉘어 낙태권에 대한 찬반 입장이 양분되었다.
오리건주에서 실시한 주민투표도 흥미로웠다. 오리건주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건강보험의 보편적 보장과 총기 소지 등록허가제에 대한 조례 입법 투표를 진행했다. 오리건주의 정치성향에 따라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찬반이 팽팽해서 개표 상황이 80%를 넘길 때까지 유력 안을 알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전통적으로 특정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 있는데 오리건주는, 비유하자면, 제주도와 비슷하다. 파랑주임은 분명하지만 공화당 의원도 꾸준하게 뽑힌다. 이번 오리건주 하원선거에서는 민주당이 4석, 공화당이 2석을 가져갔다. 건강보험과 총기 규제는 민주당의 숙원 사업이라 오리건주의 투표 결과를 통해 민심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먼저 건강보험 보편 적용 조례는 50.7% 대 49.3%로 찬성이 더 높게 나와 통과되었지만 격차가 1.4%포인트에 불과해 초박빙이었다. 총기 규제 역시 동일하게 매우 근소한 차이로 찬성이 우세했다. 파랑주치고는 예상 밖의 고전이었다.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현실이 만연한 미국에서 여전히 각자도생식 사고관이 뿌리 깊음을 새삼 확인했다.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당연한 우리에겐 의료서비스도 자율시장에 내맡겨 개인의 경제력에 따라 구매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냉담하고 살벌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통과된 조례 발의는 야경국가라는 전통적인 국가관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차 변화하며 미국 사회 내에서도 보편적 복지 확대에 무게가 실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