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극장 없고 프리랜서 배우로 뛰어도 연극은 계속된다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0.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0. 부산 연극, 공간과 사람들
남·수영구 도시철도 2·3호선 역세권 소극장 밀집
블랙박스형 비롯 제대로 된 연극전용극장 있어야
극단 소속 단원은 옛말, 프로젝트 맞춰 이합집산
인큐베이팅 전문극장·창작 뮤지컬 등 활로 모색
■극장, 새로운 연극의 시작점
2009년 말 기준 부산의 연극 전문 소극장은 15곳. ‘新문화지리지-2009 부산 재발견’ 연극 편에 실린 내용이다. 공연장 지원의 기준이 되는 ‘300석’으로 풀어보면, 2022년 말 부산에 있는 300석 미만의 민간 소공연장 중 연극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은 26곳이다. 13년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상업극 전용관·무대 환경·대관비 등을 고려하면 부산 연극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극장은 10여 곳으로 줄어든다. 현장 연극인들은 나다소극장, 하늘바람소극장 등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소속 소극장을 많이 사용한다. 일터소극장이나 경성대 예노소극장도 연극하기에 괜찮은 극장으로 꼽힌다. 한 연극인은 “극장 구조로는 부산문화회관 사랑채극장이 좋았다”고 했다. 사랑채극장은 2017년 9월부터 어린이 전용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민간극장은 남구와 수영구에 몰려 있다. 남구의 경우 소극장 9곳에 뮤지컬 전용 공연장인 드림씨어터까지 위치한다. 지도를 보면 부산시민회관과 일터소극장 등이 있는 범일동부터 도시철도 2호선을 따라 수영역까지 공공·민간극장이 이어진다. 최근 2년 사이 여기는극장입니다와 효로인디아트홀이 연제구에 새로 들어서며, 범일동~대연동~광안동~남천동~연산동 ‘극장 메트로 라인’이 3호선까지 연결되는 분위기다. 2호선과 3호선을 연결하는 수영·망미동 일대에 창단 5년 이내 ‘청년 극단’ 몇 곳의 연습실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극장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광안리에 위치한 어댑터플레이스는 온라인 스튜디오형 공연장으로 정기적으로 낭독극 공연을 연다. 새로운 장르나 연극·뮤지컬 사전제작 단계로서의 무대를 선보이는 인큐베이팅 전문 극장이다. 효로인디아트홀은 엔터테인먼트 효로인디넷과 극단 새벽이 2022년 하반기에 개관한 독립문화예술공간이다. 1층 갤러리·2층 소극장·3층 교육실을 갖춘 효로인디아트홀은 극단 새벽이 진행하는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테마연극제’의 거점 공간으로, 시민과 연극을 연결하는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소극장 위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도 비슷한 소리가 있었지만 문화 콘텐츠 다양화로 인한 연극 관객 감소, 임대료 인상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소극장 운영은 더 힘들어졌다. 2020년 청춘나비 아트홀, 한결아트홀이 문을 닫았을 때 이대로는 소극장이 사라진다는 탄식도 나왔다. 그래도 부산의 소극장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회장 최성우)는 여름창작낭독무대,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 등 소극장의 매력을 알리는 행사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18일 막을 내린 2022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은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소극장 연극 감상 기회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소극장 연극을 다시 보고 싶다’는 관객 반응에 소극장협의회 관계자들도 고무됐다. 최 회장은 “극장은 극단을 위한 공간이며, 창작 실험이 지속되어야 하는 공간”이라며 “일몰제 형태의 극장에 대한 예산 지원을 통해 극장과 극단이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제대로 된 200석, 300석 규모의 극장이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 제작자의 지적이다. 제작비가 많이 올라 일정 규모 이상 관객을 확보해야 적자를 면할 수 있는데, 소극장은 너무 작고 큰 공연장은 대관비 부담이 크다. 올여름 서울에 ‘대학로극장 쿼드’가 개관했다. 옛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을 리모델링해 258석 규모의 블랙박스 공연장을 만들었다. 무대와 객석을 마음껏 변형할 수 있어 다양한 무대 실험이 가능하다.
현재 부산에는 블랙박스형을 표방한 민주공원 작은방(소극장)이 있지만 연극인들이 원하는 완벽한 형태는 아니다.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은 마이크 없이는 대사 전달이 잘 안되고,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은 무대가 좁고 객석과의 거리도 멀다. 다른 공공극장의 경우 강당 형태 구조에서 출발한 것이 많아 무대 활용에 한계가 있다. 공간의 제약은 부산 연극인들의 작품 상상력도 제한한다. 한 무대 전문가는 “블랙박스 형태의 200~300석 규모의 연극 전용 극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극 전용 극장을 짓는다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하나의 건물에 1·2·3관이 같이 있는 구조면 좋겠다. 관객이 극장에 갔을 때 다양한 연극 중에서 원하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중심 극단, 프리랜서 뛰는 배우
‘연극을 하고 싶은 막내가 극장으로 출근한다. 무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며 극단 선배에게 화술이나 연기법을 배운다.’ 극단 세진의 김세진 대표는 “이런 형태의 동인제 극단은 이제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동인제와 비슷한 형태로 연극학과가 있는 대학 출신끼리 모인 극단이 있기도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동인제 극단과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1984년에 창단한 극단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도 “80년대까지는 각 극단의 성격이 확실했으나 90년대 들어 개인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그 뒤에는 출신 학교끼리 모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부산 극단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프로덕션’ 개념의 극단이 늘어났다. 청춘나비 강원재 대표는 “그때그때 공연 콘셉트에 맞춰 연출가부터 배우까지 팀을 꾸린다”고 했다. 강 대표는 2009년부터 이 개념을 도입했다. 청춘나비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창작단막극제 ‘나는 연출이다’를 통해 신진 연출가 육성에 앞장섰고, 연극을 뮤지컬로 재창작하는 ‘살그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어댑터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예술은공유다도 ‘연극 제작사’ 개념에 가깝다. 연출가 또는 배우 1인 극단도 많아져 어디까지 극단이고, 어디까지 연극 제작 단체인지 구분도 모호하다.
프로젝트 중심으로 극단을 운영하고, 배우는 단원이 아닌 프리랜서 개념으로 작품당 계약을 한다. 이 배경에는 극단이 단원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한다. 두 달가량 연습해서 한 작품을 올리는데 배우가 받는 돈이 약 100만 원. 세 작품은 뛰어야 한 달 수입 150만 원이 겨우 맞춰진다. 이마저도 연기 좀 한다는 배우의 경우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충당하며 무대에 서는 배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가 모두 모이기 힘들어, 아침 9시에 연극 연습을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지역의 한 연출가는 “아침에 이 연습, 점심에 저 연습, 저녁에 작품 공연. 배우들이 이런 식으로 바쁘게 돌고 있다”며 “다작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배우들이 소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어려운 가운데 각 극단은 나름의 방식으로 출구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극단이 늘어났다. 뮤지컬을 보고 연기 전공을 선택한 이들이 많고, 관련 지원금도 늘어난 영향이다. 다장르가 어우러진 융복합 공연으로 단원 구성도 다양해졌다. 극단 아이컨텍은 연극영화, 실용음악, 무용, 이벤트연출 학과 출신이 함께 활동한다. 아이컨텍 박용희 연출은 “요즘은 저작권 문제도 예민해서 연극에 들어가는 음악이나 안무를 다 만드는 추세”라고 전했다.
지역에 천착해 활동하는 극단도 나온다. 2017년 북구에 터를 잡은 극단 해풍은 올해 북구연극공동체 온을 출범시켰다. 극단 자유바다는 기장군 안데르센극장 위탁 운영을 맡아 어린이·가족극 작업도 같이한다.
5년 이내 부산에서 창단한 극단은 10곳. 1년에 두 개꼴로 극단이 새로 생기는 이유에 대해 한 연극인은 “선배들과 교류가 없는 영향일 것”으로 분석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선배 극단에 들어가곤 했는데, 요즘은 선후배 사이에 네트워크가 없어 마음이 맞는 또래끼리 극단을 창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후배들과 소통을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청년 극단의 대표는 “대학 졸업자도 줄고, 연기 전공자도 유튜브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빠지고 있어 최근에는 극단뿐 아니라 프로젝트팀을 만드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젊은 연극인들은 부산에서 교육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아카데미가 없어 무대기술 관련 세미나라도 들으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산에 터전을 잡고 연극을 한다. 5년 차 극단 판플의 양재영 대표는 말했다.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 공연에는 예전부터 이어지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극장 공연이 좋아서 소극장에서 공연을 많이 올리려고 한다.”
특별취재팀=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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