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바루 기자의 시선] ‘동경의 땅’서 희생된 日 유학생… ‘정치 공방’보다 중요한 것은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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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바루 나오코 서일본신문 기자

유학 온 지 얼마 안 된 여학생 2명
한국어·한국 문화에 큰 ‘관심’
꿈 향한 첫걸음서 안타까운 죽음
여야 모두 책임 공방에만 몰두
다시는 이런 비극 발생 않아야

도미카와 메이 씨의 아버지가 지난 3일 서울 한 체육관에서 딸의 유품인 노트를 확인하고 있다. 구겨진 노트에는 공부한 한국어 단어들과 유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적혀 있었다. 도미카와 메이 씨의 아버지가 지난 3일 서울 한 체육관에서 딸의 유품인 노트를 확인하고 있다. 구겨진 노트에는 공부한 한국어 단어들과 유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적혀 있었다.

1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 참사’는 26명의 외국인 목숨도 앗아갔다. 그중 일본인 희생자 2명은 한국에 유학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학생들이었다.

홋카이도 출신 도미카와 메이(26) 씨는 6월부터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학교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꽃다발과 고인이 좋아했던 초코우유가 가득했다. 추모 글을 쓰던 서강대 대학원생 야마시로 미사키(23) 씨는 “도미카와 씨는 유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사고 현장에서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이태원은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곳이었다”고 귀띔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유행하면서 이태원이라는 지명이 널리 알려졌다. 특히 드라마 2화에서는 핼러윈 행사 때 이태원을 정말 매력적인 곳으로 소개한다. 사고 당일 이태원에 가지는 않았지만, 야마시로 씨도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동영상을 보며 핼러윈 축제를 즐겼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면이 축제에서 아수라장이 됐고, 지금도 그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10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울 시내 한 체육관에 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유류품 약 850점이 공개됐다. 옷이나 신발에는 대부분 시커먼 신발 자국이 남아 있고 목도리에는 머리카락들이 붙어 있었다. 안경들은 휘어져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 줬다. 핼러윈 가면이나 망토 등 분장용품이 진열된 구석에는 찢어지고 구겨진 노트가 있었다. 한글로 ‘토미카와 메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본어로 ‘신촌에서 하숙하고 싶다’는 유학 생활의 희망도 적혀 있었다. 유해를 가져가기 위해 일본에서 온 아버지는 “딸이 쓴 겁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건국대 일본인 유학생도 희생됐다. 사이타마현 출신 고즈치 안(18) 씨는 한국 음악과 패션을 좋아해 8월에 유학을 왔다. 밝은 성격으로 기숙사에서 한국 친구들과 금방 친해졌다고 한다. 일본어 교사가 꿈이었다. 유가족은 “(사고가 난 시점은)꿈을 위해 첫걸음을 뗐을 때”라면서 “눈앞에서 보물 같은 딸이 사라진 현실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강의실 책상 위에는 친구들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본격화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진상 규명 속 책임자를 찾고 엄중히 그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얼마 후에는 경찰 수사를 받던 용산경찰서 정보 담당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책임의 화살이 대통령에게도 향하는 등 여당과 야당의 정쟁은 무거운 이슈가 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건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아닐까. 일본에서는 2001년 효고현 불꽃축제에서 사람이 몰린 보도교 위에서 11명이 숨지고 18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를 교훈으로 경찰은 관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최자 유무에 상관 없이 자발적으로 경비 계획을 세워 사고를 막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열풍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한국으로 이끌고 있다. 이번 참사를 지켜보는 외국인들은 적잖이 당황스럽고 두려울 것이다. 도미카와 씨 아버지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딸이 남긴 노트를 공개했다. 그는 딸의 장례식장에서 “언젠가는 딸이 좋아했던 한국을 다시 가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naokonbu19@gmail.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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