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간절함으로 도전하는 월드컵!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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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사회 통합·희망 위한 촉매제 역할
국가적 자부심 표출하는 무대

손흥민 “1% 가능성에도 뛰겠다”
재능·열망·헌신·투지가 승패 결정

국민 모두가 ‘승리를 위하여’ 떼창
아름다운 월드컵 보고 싶은 이유

“폭풍을 뚫고 나갈 때 고개를 높이 들어라/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자/ 비록 너의 꿈이 상처받고 흔들리더라도 걷고 또 걷자/ 가슴속 희망을 품고/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 가사를 담은 응원가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라(You’ll Never Walk Alone)’를 들으면 영국 명문 구단 리버풀FC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의 힐즈버러 구장에서 벌어진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의 FA컵 준결승전. 경기 시작 후 리버풀 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밀려 넘어져 96명이 압사한, 비극적인 ‘힐즈버러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 직후 경찰은 ‘리버풀 팬들의 무질서한 행동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리버풀구단과 팬들은 유족과 연대하여 ‘힐즈버러 가족 지지모임’을 결성하여 줄기차게 진상 규명을 요구했고, 결국 영국 하원을 움직여 2010년 민간 주도의 ‘힐즈버러 독립 패널’ 구성으로 이어졌다.


2년 반 동안의 조사 결과 ‘경찰 과실과 시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 응급 구조 공조 실패’로 인한 참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리버풀 팬들과 구단은 201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시작 전 홈구장에 ‘진실’ ‘정의’ 두 단어로 관중석을 꽉 채운 뒤 리버풀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합창하며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추모와 연대를 표현했다. 축구가 지역 주민과 팬, 희생자 유족을 하나로 묶어 주면서 23년간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힘이 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해안에서 10㎞ 떨어진 로벤섬 교도소에는 악명 높은 흑인차별정책에 저항한 넬슨 만델라 등 정치범들이 수감됐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당국에 “축구를 하게 해 달라”고 4년간 투쟁 끝에 1966년 매주 토요일 30분이 허용됐다. 1991년 감옥이 폐쇄되고, 흑인차별정책이 중단될 때까지 이곳에서는 매주 리그가 이어졌다. 축구는 야만적인 국가 폭력을 잊게 해 주고, 심신을 단련시키고, 노선이 다른 정치 집단을 결집하는 끈이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우리는 단순히 공을 찬 것이 아니고 축구를 통해 서로를 붙들어 주었다. 서로에게서 힘을 얻었다. 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일으켜 주었고 그 과정에서 둘 다 강해질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1954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열린 스위스 월드컵에서 패전국 서독이 우승을 차지하는 ‘베른의 기적’이 연출되면서 전쟁의 폐허에 허덕거리던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고, 전후 경제 부흥의 촉매제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계층과 인구가 즐기는 축구는 이처럼 스포츠를 넘어서서 정치가들, 국민을 함께 뛰게 하고, 같은 희망을 품는 힘을 갖고 있다.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런 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21일 카타르와 에콰도르 개막전 호루라기 소리를 시작으로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열렸다. 24일(우루과이 전), 28일(가나 전), 12월 3일(포르투갈 전) 대한민국 대표팀과 5000만 국민은 심장이 터지도록 함께 달리고, 함께 고함을 지르고, 거친 태클에 함께 뒹굴면서 밤을 지새운다. 축구 선수가 존재하는 이유인 월드컵은 국가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겨루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선수 개인의 운명은 물론이고, 국가적 자부심과 민족적 열정을 표출하는 현장이다.

32개국 대표팀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한 몸으로 뛰면서, 모든 것을 쏟겠다는 간절함이 실력과 함께 승패를 결정짓는다. 그런 연유에서 검은색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얼굴 절반을 가려서 ‘쾌걸 조로’란 별명까지 얻은 국가대표팀 캡틴 손흥민(30·토트넘)의 메시지는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제가 뛰는 것이 무리로 보일 수도 있다. 위험 감수는 제 몫이다. 1% 가능성만 있다면 앞만 보며 달려가겠다”는 승리의 열망 때문이다.

물론 부상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에 적응하고,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경기 시작 1분 만에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팀 승리가 너무 필요하고 기여하고 싶었다”면서 풀타임을 뛰고 승리(2020년 2월 16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애스턴빌라 전)를 거머쥐었던 그 간절함을 대표팀과 붉은악마 응원단,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연대한다면 16강의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신새벽에 ‘승리를 위하여’ 응원가를 부르면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공은 둥글다. 누가 더 간절하게 한 몸으로 뛰고, 누가 더 모든 것을 쏟아붓고, 누가 더 한목소리로 응원하는가에 따라 그 공이, 그 국가의 운명이 어디로 튈 줄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타고난 재능과 투지, 승리에 대한 열망과 헌신, 공감과 존중이 한데 뭉쳐져 승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아름다운 이유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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