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죽어도 부울경’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지역 사랑·자부심 각별한 부울경
최근 특별연합 좌초 등 분위기 침체
정치적 논리에 밀려 지역발전 희생
시민참여 통한 발전 전략 견인해야
최근 개봉돼 부산지역 프로야구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영화 ‘죽어도 자이언츠’는 제목만으로도 지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언젠가 딸이 물은 적이 있다. “왜 좋은 성적도 내지 못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계속 응원하세요?” 순간 머뭇거렸다. 몇 년째 그리고 올해도 여전히 자이언츠는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다. 침체한 지역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야구도 제대로 못 한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수도권에 연고를 둔 팀들이 돌아가면서 우승하는 양상을 보인다.
올해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텍사스주 휴스턴시의 ‘애스트로스’가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55년 만인 2017년에 처음 우승을 차지한 이후 다시 5년이 지나면서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처음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2017년은 허리케인 ‘하비’가 휴스턴 시내를 강타하며 50여 명이 사망하고 시내 전역이 침수되는 최악의 재난이 발생한 시기였다. 애스트로스의 우승은 상처받은 지역에 환희를 선사했다.
휴스턴 시민들은 허리케인으로 인한 집중호우로 집안에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도 라디오 중계를 통해 월드시리즈 우승 소식을 들었다. 당시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월드시리즈 경기 내내 가슴에 ‘휴스턴 스트롱(Houston Strong)’이라는 패치를 붙이고 뛰었다. 휴스턴 시민들과 항상 함께하겠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프로야구에 열렬한 응원을 보냈던 부울경 지역도 이제는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물론 성적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침체한 지역 분위기가 지역 연고 팀 응원에 영향을 주는 것도 분명하다. 자칫 지역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나 열기가 식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몇 년째 크게 나아지지 않는 듯한 지역경제 상황, 계속되는 청년층의 유출과 심화하는 지역대학의 위기, 지역소멸 위기로 인한 원도심 지역의 극심한 낙후 등 지역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염려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 애정과 열기까지 식는 단계에 이르면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역의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부울경 지역에 대한 맹목적 애정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추진되어 왔던 부울경특별연합이 좌초된 것이다. 그것도 우리 손으로 선출한 지역의 지자체장들이 특별연합의 내년 초 출범을 목전에 두고 반대하고 나섰다. 지역 내 무한 정쟁이 지역발전 정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이 이 지경에 다다르면 전문가들의 의견은 한낱 정치인들의 정쟁 논리에 파묻혀 무시되고 만다. 국가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적으로도 이러한 폐해가 계속되고 있다. 정책별로 우파 정책, 좌파 정책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버리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벌어진다. 가히 과잉정치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정치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합리적 토론의 장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시민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선거로 방금 선출된 정치인들에 의해 마음대로 좌지우지될 수 있는가? 전임 시장, 도지사가 추진한 정책은 ‘진보’, ‘보수’라는 꼬리표를 달아 바로 폐기하는 게 합리적일 수는 없다. 좌우 정치가 객관적 과학을 압도해 버리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더 나아가 합리적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맹목적 애정은 광기로 변질되기 쉽다.
정당이 교체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는 다른 곳에 비해 부산은 나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보수 측이 추진했던 엑스포, BRT 등은 공론화를 통해 진보 측이 계승했다. 북항재개발, 가덕신공항 유치는 다시 보수 측이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분명 부산의 좋은 강점이 될 수 있다. 부산의 발전에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양 날개는 힘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는 게 아닌가?
특히 유념할 것은 오션시티, 15분 도시, 그린시티 등 미래 비전으로 내놓는 현재 부산시의 정책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론화를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지금도 각지에서 표출되고 있는 과잉정치, 무한 정쟁이 미래의 지역발전을 정치의 볼모로 삼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부울경 지역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큰 지역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지역을 사랑하더라도, 이 애정은 맹목적이 아니라 합리적 토론과 합의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베풀어져야 한다. 이러한 발전 전략에 정치는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