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 내가 저격…‘나만의 향수’ 뿌린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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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표현하는 방법’ ‘나를 위한 힐링’ 아이템 된 향수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담은 ‘나만의 향수’ 만들기 인기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나만의 향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위치한 향료연구원 ‘원아뜰리에’의 향료병들.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나만의 향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위치한 향료연구원 ‘원아뜰리에’의 향료병들.

‘최대 1초.’ 프랑스의 향수 전문가 단체 ‘콜렉티프 네’가 펴낸 책 <향수 A to Z>에 따르면 사람의 뇌가 어떤 냄새를 감지하고 인식해 의식화하기까지 걸리는 최대 시간은 1초이다. 또한 향을 맡으면 단순히 그 향이 어떤 향인지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 향에 얽힌 기억과 감정도 떠오른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향기의 기억은 뇌에 새겨진다.


원포유 향장진흥협회장인 김민경 원아뜰리에 대표가 향수의 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포유 향장진흥협회장인 김민경 원아뜰리에 대표가 향수의 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취향과 개성 담은 ‘나만의 향수’

눈 감고 계속 맡고 싶은 향긋한 향기, 수백 개의 갈색 유리병, 테이블 위 비커와 스포이트, 작은 접시에 담긴 커피 원두. ‘나의 향’을 찾는 공간인 부산 수영구 광안동 ‘원아뜰리에’ 본점의 풍경이다. 원아뜰리에는 원포유 향장진흥협회장인 김민경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후각은 시각보다 빠르게 작용합니다. 직관적으로 바로 느끼지요. 그래서 사람이나 공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 있어 향이 큰 역할을 합니다.” 김민경 대표가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조향 수업’을 시작하면서 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감귤류의 상큼한 향 ‘시트러스’, 장미·재스민 등의 ‘플로랄’, 상쾌하고 시원한 풀 느낌의 ‘그린’, 사과와 딸기류 과일의 향 ‘프루티’, 깨끗한 물 느낌의 ‘마린’, 나뭇가지를 분질렀을 때 맡을 수 있는 향 ‘우디’ 등등. 김 대표는 먼저 ‘향’의 종류를 말로 설명해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의 향을 선택해 보라고 했다. 수강자가 고른 이미지의 향에 조향사가 추천하는 향을 더해 본격적인 ‘나의 향’ 찾기에 들어간다. 조향사의 선별을 거쳐 테이블에 오른 병만 해도 수십 개다.

“향 맡기는 15분 안에 끝내야 합니다. 후각은 금세 적응되기 때문에 오래 맡다 보면 향을 구분하기 어려워요. 병에 적힌 라벨을 먼저 읽고 향을 맡으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으니 향을 먼저 맡으세요. 마음에 드는 향이 있다면 그때 라벨을 보고 이름을 메모해 두세요.” 향수를 만드는 테이블에 커피 원두가 왜 있나 싶었는데, 원두의 역할은 ‘후각 초기화’였다. 여러 향을 맡아 향이 잘 느껴지지 않을 땐 커피 원두 향을 맡으면 된다. 가장 마음에 든 순서대로 적어 보니, 향을 맡기 전에 선택했던 이미지의 향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린’이나 ‘우드’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마음에 든 향은 ‘플로랄’과 ‘시트러스’ 계열이었다. 김 대표는 “향수는 직접 사는 것보다는 선물 받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향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렇게 수강생이 고른 향은 조향사가 적절하게 조합해 ‘나만의 향수 레시피’를 만들어 준다. “예전에는 만들어진 향이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조향이라는 문화가 퍼지고 있어요. 가장 좋은 향수는 내가 맡았을 때 기분이 좋은 향수입니다. 옷을 예로 들면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인 거죠. 자기만의 향을 만들어서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양한 향을 맡으면서 나의 취향을 찾는다. 다양한 향을 맡으면서 나의 취향을 찾는다.
직접 선택한 향료로 나만의 향수를 만들고 있다. 직접 선택한 향료로 나만의 향수를 만들고 있다.

■무난·평범·보통이 아닌 남다른 개성

코로나19는 향수의 부흥을 이끈 계기가 됐다.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쓰면서 사람들은 메이크업 대신 향수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향’을 넘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스타일 아이템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관세청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향수 수입액은 2억 3562만 달러로, 코로나 발생 전인 2018년의 1억 6643만 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향수 중에서도 특히 값비싼 ‘니치 향수’가 향수 호황을 이끌었다. 니치 향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nicchia’에서 온 말로, 소수를 위한 프리미엄 향수를 뜻한다. 딥디크·조말론·바이레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아낌없이 지출하는 MZ세대가 주 소비층이다. 20만~40만 원대의 고가이지만, 비교적 적은 돈으로 명품을 향유하는 것과 비슷한 만족감을 얻는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는 쇼핑 트렌드가 니치 향수의 인기를 키웠다.

니치 향수보다 저렴하지만 흔하지 않다는 장점을 가진 ‘인디 향수’도 뜨고 있다. 인디 향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향수나, 소규모 업체가 만든 향수를 말한다. 조향을 체험하거나 배워서 나만의 ‘퍼스널 향수’를 만드는 이도 많다. 한국 사회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내년 트렌드의 첫 키워드로 ‘평균 실종’을 내세웠다. 취향이 다변화되는 ‘N극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장의 ‘전형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향수를 찾는 N명의 개인이 있다면 N개의 취향이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향수 트렌드가 달라진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커플들이 데이트 코스로 향수 만들기 체험을 주로 했다면, 최근에는 나만의 향을 찾고 즐기기 위해 혼자 오는 사람이 많아요.” 부산을 찾은 여행객들의 방문도 많다고 한다. 탤런트 정유미 씨가 여행지를 향수로 기억한다고 말한 것처럼 부산 여행을 특정한 향으로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향수는 불안감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힐링 도구로도 쓰인다.


■퍼퓸·오드퍼퓸·오드투알레트·오드코롱?

향수를 고를 때는 좋아하는 ‘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향률’도 고려해야 한다. 부향률은 알코올 용액 안에서 향의 원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부향률이 높으면 향이 강하고 지속 시간이 길어진다. 부향률이 높을수록 가격도 비싸진다. 향수는 부향률에 따라 보통 4가지 종류로 나뉜다. ‘퍼퓸’은 부향률이 15~20%로 가장 높고 10시간 이상 향이 지속된다. ‘오드퍼퓸’의 부향률은 7% 정도로 향 지속 시간은 5시간 전후. ‘오드투알레트’는 부향률 3% 수준으로 지속 시간은 3시간, ‘오드코롱’은 부향률 1% 정도로 지속 시간은 1시간으로 가장 짧다. 단, 향의 지속력은 향료의 종류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노트’라는 단어도 알아 두자. 노트는 특징이 있고 식별 가능한 향기를 말한다. 향의 첫 번째 인상인 ‘톱노트’는 최초 10분간 풍기는 향으로 시트러스, 그린, 프루티 등의 계열이 많이 쓰인다. 이후 3시간 정도까지 풍기는 향이 ‘미들노트’로 플로랄 계열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까지 은은하게 향을 뿜는 잔향이 ‘베이스노트’. 최대 12시간까지 지속되며, 우디·머스크·모시 등 중후한 향들이다.

향수 보관의 가장 큰 적은 열·빛·습도·공기이다. 책 <향수 A to Z>에서는 향수를 패키징 상자에 넣어 서늘하고 온도가 일정한 찬장에 보관하는 방법을 권한다. 상자도 없이 습기 가득한 욕실에 두거나 창문 가장자리에서 햇빛에 노출하는 것이 최악이다.

향수는 어떻게 뿌리는 게 좋을까. 김민경 대표는 “두 개 이상의 향수를 레이어드 해보라”고 권했다. 내가 가진 옷을 계절이나 기분에 따라 겹쳐 입듯이, 내가 좋아하는 향을 겹쳐 쓰면 또 다른 향을 즐길 수 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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