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이태원 참사 수사·정치 공방 한창
유가족 동의 없이 사망자 명단 공개
정쟁거리로 전락해 진정한 추모 오염
변협, 국가배상책임 소송 등 법률 지원
피해자 및 유가족 구제 방안 마련하고
국가안전시스템 정비 계기로 삼아야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의 유가족과 그 가해자, 의료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의료진,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어느 가장과 그의 남은 가족, 그리고 상속재산 분배 문제 등.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손해배상이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든, 남아 있는 상속재산 처리든,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의 뜻에 따라 죽은 이에 관련된 법적 절차는 진행된다. 한 사람의 생을 정리함에 있어서, 변호사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겠지만, 그 이전에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슬픔을 공감하는 것이 모든 일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사건 처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158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196명이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어느새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경찰은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켜 전방위적 압수수색과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한창이다. 촛불 추모와 함께 ‘퇴진이 추모다’라는 정권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도 열렸고, 책임 소재를 위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계획안도 제출되었다.
그런 와중에 한 언론에 의해 이태원 참사의 사망자 명단이 유가족의 동의 없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게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양 정당의 상대 진영을 향한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거칠고 날 선 표현을 보면, 어느새 희생자들은 보이지 않고, 이번 참사가 정쟁거리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오랜 기간 반복된 그 트라우마가 또다시 반복되는 작금의 현실은 슬픔에 젖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진정한 추모마저 오염시킨다.
이태원 참사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람들은 그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부상자들과 희생자들이 떠난 현실에서 또다시 살아가야 할 유가족들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안전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지 정쟁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내 이웃의 처참한 사고에 대해 피해자와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제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압사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구제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부실 대응, 공무원의 직무유기 등 국가배상책임 소송을 상담하거나 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률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적 재난의 시기에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변호사협회의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
둘째, 관련자들의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다중이 운집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국가적 안전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는 일 또한 시급하다. 이번 참사에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지역 축제 안전관리 매뉴얼’을 정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미비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2000년대 지역축제에서의 압사 사고를 계기로 당시 정부는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재난안전법을 개정하여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행사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은 점과 법 적용에 있어 애매모호한 조항 때문에 이태원 참사에서는 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재난안전법은 그 적용 대상을 순간 최대 관람객이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 축제, 산 또는 수면에서 개최하는 지역 축제, 불·석유류 또는 폭발성 물질을 사용하는 지역 축제로 규정했지만, 정작 중요한 무엇을 ‘지역 축제’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는 규정하지 않았다.
지자체의 장이나 행안부가 ‘지역축제’로 판단하지 않으면, 이번 핼로윈 축제와 같이 아무리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에 우려가 있어도 안전 매뉴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또한 수많은 법령과 매뉴얼만으로는 모든 재난과 인재에 대응하지 못하기에, ‘매뉴얼에 없으니, 책임이 없다’는 책상 행정,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만큼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현장 책임자가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관련자에 대한 처벌과 책임추궁, 제도적 정비와 대책 마련도 모두 사람을 중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고, ‘살아 있는 국민’을 지키기 위한 정책으로 이어져야지, 결코 정쟁거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