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86>소설 보면서 이런 걱정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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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요즘 출판계에선 정지아의 자전적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화제다. 화자가 빨치산 부모의 딸인 데다 아버지 장례식이라는 다소 무거운 상황임에도 술술 읽히는 유머러스한 문장의 힘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의 추천도 판매에 한몫했겠다.

한데, 어문교열기자로서는 잘 팔린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 띄어쓰기 잘못은 논외로 하더라도, 소설에서 오자나 부정확한 말이 꽤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눈치 빠른 동식씨가 오빠를 자기 테이블로 이끌었다. 변죽 좋고 오지랖 넓은 사람이 귀찮기만 한 것은 아니다.→‘변죽’은 그릇이나 세간, 과녁 따위의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 이야기하는 것을 일러 ‘변죽을 울리다’라 하는 것. 이 자리에는 ‘반죽’이 와야 했다. ‘뻔뻔스럽거나 비위가 좋아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는 성미’라는 뜻이다. ‘반죽이 좋다’고 하면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아니하다’라는 뜻.

*하얀 이불에 쌓인 두 사람이 어릴 때 본 하얀 누에고치 같았다.→‘쌓다’는 겹겹이 포개어 얹는다는 뜻. 이불로는 싸야 하니 두 사람은 하얀 이불에 ‘싸인’ 상태.

*“너도 할배 유골 뿌려볼래?” “그거이 뭔디요?” “할배 태우고 나온 뼛가루.”→‘뼛가루’는 유골이 아니라 ‘골분(骨粉)’이다. ‘유골(遺骨)’은 말 그대로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뼈. 또는 무덤 속에서 나온 뼈’. 유해나 해골과 비슷한 말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유골을 조금씩 흩뿌렸다’나 ‘차창을 열고 유골을 한줌 흩뿌렸다’라는 표현도 잘못.

*…도로변에는 핏빛 연산홍이 불타오르고 있었고….→‘연산홍’이라는 나무는 없다. 대신 ‘영산홍(映山紅)’이 있는데, ‘왜철쭉’이라고도 한다.

*어머니 예상대로 동네 사람들은 네모반듯하지 않아 비뚤비뚤한 다락논의 네 귀퉁이에는….→‘다락논’은 ‘다랑논’의 북한말.

*치매가 더 진행되어 나름 고결했던 지난 삶에 똥칠을 할까봐….→‘나름’은 의존명사여서, ‘그 나름/하기 나름’처럼 선행 수식어가 와야 한다.

*작은 동네가 난생처음 사람들로 북적북적….→‘난생처음’은 ‘세상에 태어나서 첫 번째’라는 뜻. 한데, ‘태어나다’가 ‘사람이나 동물이 형태를 갖추어 어미의 태(胎)로부터 세상에 나오다’이니 결국 ‘난생처음’은 사람이나 동물에게만 쓸 수 있는 말. 물론 ‘동네가 태어났다’를 비유적 용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설득력은 좀 약하다.

어쨌거나, 개정판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바로잡혔으면 싶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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